수어사이드 하우스
찰리 돈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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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전 하나로 형을 죽였다. 간단하고도 가볍게, 그리고 완벽히 그럴듯하게. 그 일은 선로에서 일어났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알게 되겠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차는 여러모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눈에 오직 색의 잔상만이 남는다는 점에서는 위풍당당하다. 곧 지진이라도 닥칠 듯이 땅을 뒤흔든다는 점에서는 강렬하다. 하늘에서 뇌우라도 쏟아지는 듯 선로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는 귀를 먹먹하게 한다. 달리는 기차는 이 모든 것을 전부 갖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달리는 기차는 치명적이다.       p.9

 

인디애나 북동쪽, 미시간 호수 근처에 있는 페퍼밀드에는 엘리트 기숙학교인 웨스트몬트 사립고등학교가 있었다. 엄격한 규율과 혹독한 학업으로 정평이 난 곳으로 사립고 순위에서 자주 상위를 차지했으며, 4년제 대학 진학률 백 퍼센트를 자랑했다. 위풍당당한 모습의 유서 깊은 건물을 보며, 부모들은 이런 곳이라면 외부 세계의 위험에서 안전할 거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보냈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삶을 바로잡고 단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교내에 버려진 교사 사택에서 학생 두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 3일 후 경찰은 범인을 찾아냈지만, 그 화학교사는 사택 옆을 지나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한다. 겨우 살아남았지만 뇌손상을 입어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 후 일년, 그날 밤 생존한 학생 세 명이 다시 사택으로 돌아가 교사가 자살 시도한 자리에서 똑같이 기차에 뛰어드는 일이 벌어진다. 대체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살인사건에서 살아남았음에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화물열차에 뛰어들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가. 이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것은 놀랍게도 한 팟캐스트 방송이다. 사건의 의문점을 파헤치는 자극적인 팟캐스트 <수어사이드 하우스>는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순식간에 화제가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전직 FBI 프로파일러이자 현재는 법정 심리학자인 레인 필립스와 미해결 사건 수사에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범죄 재구성 전문가 로리 무어가 등장한다. 구교사 사택이 ‘자살의 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와 이미 범인까지 밝혀지고 끝난 살인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계속 현장으로 돌아가 자살하게 되는 이유만으로도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바빠지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일 년 전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방송사 유명 진행자와 신문사 기자, 법정 심리학자와 범죄 재구성 전문가라는 다소 낯선 설정때문에 더 흥미진진한 작품이기도 했다.

 

 

 

예쁘고, 어리고, 아무 잘못 없는, 자신 앞에 놓인 기나긴 생을 채 살지 못하고 간 소녀. 사진을 본 순간 로리는 마음이 끌리는 걸 느꼈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파헤칠 때마다 느끼는 거였다. 마치 브리짓이 삶과 죽음의 깊은 틈 사이로 갈고리를 던져 로리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만 같았다... 로리는 죽은 자의 영혼이 고이 잠들었다고 확신할 때까지 그들에 대한 아주 작은 것도 잊을 수 없었다. 이런 무방비 상태는 그녀를 늘 막막하게 했다. 그녀가 그토록 까다롭게 사건을 고른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희생자들과의 관계에서 그녀는 큰 부담과 동시에 막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p.247

 

개인적으로 범죄, 스릴러 소설은 플롯이 복잡할 수록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잠시 내려놓은 순간에도, 머리를 놔주지 않는 책을 쓰려고 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 작품 역시 탄탄한 플롯과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에 굉장히 몰입도가 뛰어난 이야기였다. 특히나 로리 무어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는데, 골동품 도자기 인형을 수집하고 복원 작업을 하는 것이 취미라는 점도 이색적이었고, 자폐증에 가까울 정도로 강박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억력과 지능을 활용해 범죄 수사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범죄 재구성 전문가'라는 직업도 독특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보고도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그녀의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부분이 잘 표현되어 있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찰리 돈리는 2018년에 데뷔한 뒤로 3년간 총 5권의 책을 내놓는 엄청난 속도로 호평을 받아 왔다고 한다. 그는 “독자를 속이지 않는다”는 서스펜스의 원칙을 지키면서 휘몰아치는 사건을 속도감 있게 내놓는 작가로 평가 받고 있는데, 첫 페이지부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특히나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작가가 쓴 스릴러 소설들이 모두 독자적인 작품이지만, 이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후의 소설에 간간히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전작들과 캐릭터들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어, 가능하면 그의 전작들도 모두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리 돈리의 다른 작품들도 어서 빨리 국내에 소개되기를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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