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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이어달리기 - 마스다 미리 그림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오연정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평점 :
어른의 세계에는 표면적으로 교제하는 경우가 있다. 날씨라든가 음식 이야기를 하다가 쓱 헤어지는 가뿐함이여! 하지만 그런 교제 중에도, 어떤 순간에 따끔따끔 마음이 아픈 경우가 있다... 날아오는 나쁜 공 모두를 탁탁 되받아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무리다. 나는 평소에도 논리정연하게 말하지 못한다. 당황했을 때는 한층 더 어렵다. 나는, 나를, 나의 말로 도울 수가 없다. p.48~49
마스다 미리의 2020년 출간작을 함께 모니터링하는 모임, '마스다 미리 패밀리'가 되었다. 내가 고른 책은 작년 출간작 중에 <행복은 이어달리기>이다. 작년에도 꽤 많은 책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내가 읽은 마스다 미리의 책이 세 권이라 그걸 제외하고 골랐다. 그녀의 만화도 좋아하고, 에세이도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림에세이이다. 커다란 행복보다 일상의 소소하게 작은 행복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스다 미리라서 '행복은 이어달리기'라는 제목부터 너무 와 닿았다.
1킬로그램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물에 뜬 채로 하늘을 보고 싶어 수영을 배우고, 전철 안에서 자느라 정류장을 놓친 남자아이를 깨워 반대편 열차에 태워주고, 길을 걷다 발견한 물웅덩이 속에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가 있을 거라 상상하고, 친구들과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 밤 벚꽃놀이를 가서 솜사탕 한 봉지를 순식간에 먹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면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싶을 만큼 작은 일상 속 순간들, 우리에게도 매일 같이 벌어지는 평범한 나날들. 그런데 마스다 미리는 그 속에서 기어코 반짝거림을 발견해낸다.
이웃 마을까지 걸어서 카레를 먹으러 가고, 또 걸어서 돌아온다. 밤의 주택가에서 기분이 잔잔해진다. 남의 집 텔레비전과 목욕물 소리. 희미한 가로등, 환한 가로등. 가만히 놓인 자전거들. 온갖 일이 일어나도 하루는 어김없이 저물어간다. '좋은 사람'이 다정한 사람이라면 내게도 당연히 다정한 면이 있다. 있다! 많이 있다! 단언할 수 있다. 그 다정함을 스스로 헤적거려버리는 날도 있다. p.162~163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실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 않은가. 이제 더 이상 내 뒤에서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줄 사람도, 넘어지고, 다쳤을 때 달려와 토닥여 줄 사람도 없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고, 무턱대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어른인데, 그렇다면 어른의 행복이란 뭐가 있을까.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하고, 한숨으로 가득한 일상이라도 버텨내야 하고, 정신 없이 바쁘게 사는 와중에 타인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나의 자존감도 지켜야 하는 현실은 나를 지치게 하고,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냥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기분 좋은 일은 없을까. 의미가 없더라도, 뭔가 이득이 생기지 않더라도, 그냥 그 순간으로 충분한 행복 말이다. 날씨가 좋아서 행복하고, 걱정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서 좋은 날이고, 카페에서 먹은 디저트가 맛있어서 행복하고, 갓 내린 커피가 너무 근사해서 설레는 그런 것들 말이다. 마스다 미리는 말한다. 작은 행복이 여러 개 모여서, 그 소소함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어른의 행복이라고 말이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녀의 소녀 같은 마음과 행동들이 참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재에 대한 걱정들이 책을 읽는 동안 조금씩 옅어진다고나 할까. 그녀의 긍정 마인드가 내게도 전염되는 기분도 들고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읽는 것일 테고 말이다. 여자들의 마음을 콕콕 찝어 내어 그려주어 매 페이지마다 맞아. 맞아.를 연발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해서 정말 공감하며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는 안다.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아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어떤 날이라는 것을.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수많은 날들 중에 어느 한 순간이 오래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 수록 조금씩 더 좋아지는 것이 바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다. 오늘의 인생을 넘기면, 그 다음의 오늘의 인생이 있고, 내일의 내가 있다고, 그렇게 인생은 계속 이어지는 거라고 마스다 미리는 말했다. '보통의 매일이 지금처럼 계속 이어지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오늘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