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는 아이
크리스티안 화이트 지음, 김하현 옮김 / 현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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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가 과거를 떠올릴 때 뭐가 보이는지 아니?” 아빠가 말했다. “깊고 넓은 바다야. 기억들은 물고기지. 얕은 곳을 걸어 다닐 땐 원하면 물고기를 집어 들어서 볼 수 있어. 두 손으로 기억을 붙잡고 들여다본 다음 다시 물에 던져 떠나보낼 수 있지... 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물도 캄캄해지는 거야. 곧 내 발이 안 보이기 시작하지. 물고기도 안 보여. 물고기가 다리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건 느껴지지. 물고기들은 저기 어딘가에, 깊은 물속에 있어. 걔네는… 상어야, 키미. 상어고 괴물이야. 가만히 내버려둬야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니?”     p.100

 

멜버른에서 사진 강사로 일하고 있는 킴벌리 리미에게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28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납치 사건에 대해 들려 주며, 켄터키 주 맨슨에 있는 자기 집에서 두 살 때 사라진 아이가 바로 그녀라고 말한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일까. 부족함 없이 사랑 받고 자랐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였다. 그런데, 사실은 엄마가 외국에서 자신을 납치한 유괴범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그녀가 알고 있는 엄마는 전혀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엄마는 암으로 4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 그녀 앞에 하나 둘씩 증거가 나타나고, 직접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어린 시절 납치되었다는 그곳을 찾아 가게 된다. 동생인 에이미는 이 문제를 끝까지 파헤치면 모든 게 변해버릴 거라고 말하며 걱정한다. 아빠는 끝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비밀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가지 말라고 네가 모르는 게 더 있다고 딸을 말린다.

 

28년 전 컨테키, 맨슨에 살고 있는 잭과 몰리 부부에게는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첫째 딸 에마, 둘째 아들 스튜, 그리고 막내인 두 살 새미. 약국을 운영하는 잭은 빛 안의 교회 교인이었지만 10대 때부터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지만, 잭과 결혼 후 교인이 된 몰리는 뒤늦게 믿음을 발견하고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예배에 전부 참석할 정도로 진지했다. 하지만 몰리는 새미를 낳고 나서부터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고 부부 사이는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2층 침실에 있던 새미가 사라진다. 경찰은 침입자의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고, 목격자도, 협박 편지도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말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시 날 잃어버릴 일은 없을 거라고, 스튜어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에이미에게 그렇게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느라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불안한 마음은 일시에 가라앉았다. "미안해요. 통화 좀 해야겠어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뒤를 돌아보았다. 스튜어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자기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방금 유령이라도 본 사람 같았고, 스튜어트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다시 한번 들었다.       p.262

 

이야기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현재와 미국 켄터키 주 맨슨의 과거가 교차로 진행되며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유괴 사건을 비롯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이 전혀 알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는 설정 자체가 스릴러 장르에서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인물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굉장히 독특했다. 등장하는 인물 들 각자가 자신만의 사정이 있고,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모두 의심스러워지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배 때 독사를 만지고 여러 종류의 독을 삼키는 등 여타의 종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빛 안의 교회라는 존재도 플롯과 배경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사건의 미스터리에 더욱 긴장감을 부여해준다. 장르 소설들을 꽤 많이 읽은 편이라 사실 초반 수십 페이지만 읽으면 대부분 답이 나오는 편인데, 이 작품은 사백 여 페이지가 끝날 때까지 지루할 틈 없이 읽을 수 있어 정말 흥미로웠다.

 

이 작품은 무명의 작가를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책이다. 데뷔작으로 가장 빠른 판매기록을 세운 화제작이기도 한데, 호주의 작가 크리스티안 화이트는 시나리오 작가, 영상편집자, 골프카트 운전사, 티셔츠 인쇄 등으로 생활을 이어가며 글을 쓰다 이 작품으로 미발표 작품에게 주는 빅토리안 프리미어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곧 영화화될 예정이기도 해서,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도 매우 기대가 된다. 작년에 출간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인 <THE WIFE AND THE WIDOW>도 호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범죄소설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가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어렸을 때 납치되었고, 부모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사실은 유괴범이었다면 어떨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유괴'라는 비현실적인 범죄를 매우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혹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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