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갇힌 남자 스토리콜렉터 8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남자가 살해당했다.
마치 지독히 재미없는 농담의 첫마디 같군. 말기 암인, 어차피 며칠이나 몇 주 있으면 죽을 남자가, 총탄에 의해 남은 길을 서둘러 가게 되다니.
데커는 메릴 호킨스의 방 벽에 몸을 기댄 채, 2인조 감식반이 전문적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p.37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 <폴른:저주받은 자들의 도시>에 이은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작품이다. 에이머스 데커,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은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노숙자 보호소를 거쳐 사설 탐정으로 잡다한 일을 하며 밑바닥으로 추락한 삶을 살았지만, 결국 사건 해결에 활약을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FBI 미제 수사 팀에서 일하게 된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전작에서 데커는 수사 과정에서 화염일 피하다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자신의 완벽한 기억력과 공감각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사고를 당했고,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댓가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됐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사실 아무 것도 잊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떤 기억을 찾으려고 할 때 머릿속의 영상 저장 장치를 켜면, 마치 녹화된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 보기라도 하듯이 눈 앞에서 그 형상들이 보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거기에 더해 숫자와 색깔이 연결됐고, 시간도 그림처럼 눈에 보이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색깔들이 불쑥 불쑥 생각 속으로 끼어들고 사람이나 사물을 색깔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하는 수사란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 시리즈 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매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바로 그 능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면 어떨까.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던 그 완벽한 기억력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게 된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신작은 앞으로 이어질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데커는 거리 맞은편에 세워둔 차에 앉아서 옛집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지금 데커의 마음속보다는 밤의 어둠이 차라리 더 밝을 것이다.
데커는 자신에게 과거에 살든가 현재에 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종용했지만, 둘 다 불가능했다.
어느 쪽을 택해야 하지? 이렇게 어려운 결정일 리가 없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p.411

 

데커는 딸인 몰리의 열네번째 생일을 맞아 고향인 벌링턴을 찾는다. 케이크도, 선물도 없었다. 그의 딸은 4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살해당했으니 말이다. 데커는 언젠가 땅 밑에 누워 있는 가족에게 자신도 합류하게 될 그날까지 매년 딸의 생일마다 이곳을 찾을 계획이었다. 무덤을 돌아보는 데커에게 한 늙은 남자가 다가온다. 그의 이름은 메릴 호킨스, 데커가 벌링턴 경찰서 강력반 신참일 때 첫 살인 사건을 맡아 체포했던 남자이다. 두 아이를 포함해 네 사람을 살해한 죄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그는 자신이 말기 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출소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데커가 틀렸다고, 자신은 무죄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라고 하던 호킨스는 얼마 뒤 이마 중앙에 총알이 박힌 채로 발견된다. 말기 암이라 어차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가 살해 당한 이유는 뭘까. 과연 완벽한 기억력의 소유자 데커가 실수를 저질렀던 것일까. 만약 무고한 남자가 유죄 판결을 받도록 하는데 자신이 한몫을 했다면, 반드시 그걸 바로잡아야 다고 데커는 생각한다. 그리고 13년전의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데커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던 의심은 점점 더 호킨스가 무죄라는 확신으로 바뀌게 된다.

 

출간되는 족족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80개국 45개 언어로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1억 1천만 부가 팔린 작가. 출간 수익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범죄 소설 작가'인 데이비드 발다치의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는 올해 여섯 번째 작품인 <Walk The Wire>까지 출간되었다. 국내에서도 매년 한 권씩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 여섯 번째 작품도 빨리 만나 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잘 빠진 스릴러를 만나 보고 싶다면, 대중성과 작품의 완성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범죄 소설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거듭되는 반전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재미를 선사할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