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투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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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작가들만이 늘 삶과 허구를 혼동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나는 타고난 경험론자였다. 작가들은 사실인 척해서 돈을 벌며, 그들이 지어낸 것을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적절한 곳에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실제 세계를 이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의 예술이 지닌 한계에 대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언쟁을 벌일 것도 없고, 변장을 한 채 상상의 경계를 넘고 다시 넘는 듯 보여서 독자에게 불충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한 책들에는 이중첩자가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p.118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세리나 프롬은 지방대학에 가서 느긋하게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세리나가 지닌 수학적 재능을 살려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랬다. 결국 수학과로 진학은 했지만, 대학에 가서야 자신의 수학적 재능이 평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공 수업은 뒷전에 두고 독서에 빠져 지냈다. 그녀는 글을 뭉텅이로, 단락을 통째로 한눈에 집어삼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탐욕스럽게 독서에 매달렸다. 그리고 결국 그 책들 덕분에 졸업 후 정보기관에서 일하게 된다. 보안정보국 MI5 입사해서 보니 자신이 채울 자리가 하급 보조요원이라는 걸 알게 되고 실망하지만, 입사한 지 구 개월 만에 요원으로 승진해 첫 임무를 맡게 된다.

 

‘스위트 투스’라는 암호명의 이 작전은 지식인들을 후원하는 단체의 소속으로 위장해 작가들 중에 적합한 인재들을 선정하는 것이었고, 세리나에게 주어진 타깃은 갓 데뷔한 젊은 소설가 톰 헤일리였다. 그리고 세리나는 그의 작품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와 연인이 되고 만다. 애초에 스파이로서의 그녀의 비밀 임무 수행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못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불같이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사랑이 끝날 거라고 생각해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두 사람은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더욱 서로가 서로에게 매료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시작부터 비밀이 존재했기에 완벽할 수 없었다. 과연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세리나는 스파이 임무를 제대로 완수할 수 있을까.

 

 

결국 확률 계산은 기술적 세부사항에 불과했다. 그 단편소설의 힘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둠 속에 누워 잠들기를 기다리며 창작에 대해 무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독자로서, 속독자로서 나는 창작이란 걸 당연시했고, 그 과정은 내가 골치 썩일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책꽂이에서 책을 빼면 그 안에 사람들이 사는 창조된 세계가 있었고 그 세계는 우리가 사는 곳만큼이나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레스토랑에서 몬티 홀과 씨름하던 톰처럼 창작의 기술을 파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p.354~355

 

이언 매큐언은 냉전 시대 벌어진 <인카운터> 사건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고, 그것을 계기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1967년 반공주의를 지지해온 영국 잡지 <인카운터>가 CIA 자금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그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72년으로, 2차세계대전 후 굳건히 자리잡은 냉전체제가 문화계로 무대를 옮겨 물밑에서 은밀한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매큐언은 국내 보안 담당 MI5에서 벌였을 법한 가상의 작전, '스위트 투스'를 만들었다. '스위트 투스'는 ‘단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뜻하는 단어로 MI5가 작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그들의 ‘슈거 대디’, 즉 물주가 되어 그들이 반공주의 저술을 생산하도록 은밀하게 이끌려는 전략이다.

 

이 작품은 이언 매큐언이 그려내는 스파이 소설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더 재미있었던 것은 문학과 창작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리나와 톰은 첩보원과 타깃으로 만나지만, 각각 독자와 소설가이기도 하니 말이다. 게다가 톰이 쓴 소설들이 작품 속의 작품으로 여러 편 등장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문학적 취향과 독서 방식, 그리고 소설가의 창작 작업과 분석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스파이로서 세리나의 임무, 소설가인 톰의 집필활동, 그리고 두 사람의 연애가 하나가 되면서 이야기는 후반부의 강렬한 반전으로 향해간다. 이언 매큐언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고, 스파이 소설들을 꽤 읽어 봤다 하는 독자라면 색다른 분위기의 매혹적인 스파이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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