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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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된 적 없어요."
"알아요.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고도의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린 여전히 소통하고 싶은 생각들은 뇌 속에 가둬 두고, 꿀꿀대는 거로만 표현하는 유인원에 불과하죠."
"영문학 교수 아들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요."
"아버지로부터 문학적인 유전자는 물려받지 못했나 봐요."     p.196

 

조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유리멧새의 부화 성공률에 대해 조사 중이다. 키니 교수님의 산장을 빌려 그곳에서 지내면서 연구에만 몰두하던 그녀는 어느 날 숲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파리한 얼굴에 헐렁한 후드 티와 바지를 입고 있는 소녀는 자신이 바람개비 은하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지구에 집이 없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새벽 4시부터 열세 시간 이상 들판과 숲 속을 헤매고 다니며 일을 했던 조는 아이의 장난을 받아주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이름도, 집도 없다는 소녀의 부모를 찾아주고 싶지만, 경찰에 신고하면 도망가겠다는 아이의 몸에 긁히고 멍든 자국이 발견된다.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조는 달걀 파는 남자 게이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아이를 돌보게 된다.

 

사실 조는 암으로 투병 중인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대학을 휴학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같은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두 가슴과 난소를 모두 제거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남자친구는 그녀를 외면했고, 2년 뒤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그녀를 남자 대학원생들은 어색하게 대했다. 외진 곳에서 달걀을 팔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의 게이브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신경쇠약과 우울증, 광장 공포증으로 치료를 받아 왔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엄마를 돌보며 살고 있는 그에게는 어린 시절에 목격한 부모의 충격적인 사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하고 똑똑한 모습을 보이는 소녀는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 지구에 머물러야 한다고, 그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소녀는 정말 외계의 존재인 걸까? 각자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아왔고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와 남자, 그리고 자신이 외계인이라 말하는 정체 불명의 소녀까지 세 사람이 함께 지내면서 펼쳐지는 드라마는 잔잔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아이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떼었다. 조는 아이가 쉽게 말을 꺼낼 수 있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미동도 않고 숨도 거의 쉬지 않았다. 그녀는 얼사가 중요한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얼사는 어두운 숲속을 응시할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니?"
조가 묻자, 아이가 눈을 돌렸다.
"만약 내가 진짜로 다른 세상에서 왔다면? 언니는 단 한순간이라도 내 말을 믿은 적 있어?"       p.275

 

숲과 별이 만난다는 근사한 제목과 그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설레이는 표지를 한 이 작품은 글렌디 벤더라의 데뷔작으로 아마존 작가 랭킹 1위를 비롯해서 여러 매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의 배경은 도시에 사는 우리가 거의 접해볼 수 없는 숲이다. 주인공은 셀 수 없이 많은 새알과 아기새를 보고,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이 함께 있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고, 표범개구리를 잡고, 꿀물을 마시는 벌새를 본다. 하천의 무성한 덤불과 쐐기풀을 헤치고 지나가서 둥지를 살피고 관찰하는 일을 하는 그녀의 시선으로 우리는 회색 빛의 어두운 숲 속을 느끼고, 후두두 산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멸종 위기 조류 전문가로 활동했던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조류학을 전공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디테일과 묘사가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암 수술 이후 젊은 나이에 여성성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이성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된 조, 어머니의 외도로 태어났기에 아직도 누나의 경멸과 멸시를 견디며 살고 있는 게이브, 외계인 행세를 하며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소녀 얼사, 이들 세 사람은 각자의 상처를 홀로 끌어안고 살아 왔다. 그들 곁에는 꼭 필요한 순간에 아무도 없었다. 가끔은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기도 하고, 또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타인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되기도 한다. 오히려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이라는 것 때문에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 주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생각하는 것도, 취향도 완전히 다른 세 사람이 서로의 흉터를 통해서 가까워지게 된다. 만약 지금 외롭다면, 누군가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면, 이 작품이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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