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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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을 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착각. 사랑의 힘이 그렇게 세다는 착각. /그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고 받는 사랑에 움츠렸고 주는 사랑에 인색했다. /그럼에도 나는 어쭙잖은 경험으로 사랑이 충만한 내가 그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만이었지.      p.106~107

 

티비 프로그램을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라 <연애의 참견>도 가끔 지나가다 본 게 전부이지만, '본격 로맨스 파괴 토크쇼'라는 기획 의도에 맞게 사연 속 커플의 연애들은 지지하고 싶다기 보다, 이어가면 안 된다고 말리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연애도 있었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스토리도 있었고,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해서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분명 누군가의 사연을 토대로 만들어진 드라마이니, 현실감이 있어야 할 것인데, 화면 속 그들의 연애는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사랑할 때만 가능한 온도들이 그 바깥에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고, 그 속에 있을 때는 죽을 것 같던 감정도 다 끝나고 나면 내가 왜 그랬나 싶을 만큼 객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연애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타인의 연애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보는 것일 테고 말이다.

 

이 책은 [연애의 참견]을 기획, 제작한 고민정 작가의 첫 에세이이다. 시즌1부터 시즌3까지 연애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사연들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들었던 물음,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오랜 통찰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사랑에세이이다. 작가는 그 사연들을 보면서 매번 이렇게 생각했다. 사랑 하나 하자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바로 거기서 이 책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키우는 것보다 빨간불의 고장 난 타이머를 고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당신의 빨간불이 적절한 타이밍에 작동하는지, 빨간불이 들어왔을 때 발길을 멈추고 돌아볼 수 있는지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돌아봐야 하는 '문제'이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은 빨간불 속에 있다고 믿으면서.      p.164

 

기약 없는 장거리 연애를 더 하자고 할 수가 없어 끝낸 5년의 사랑은 2년의 이별을 남기고, 가난한 대학생의 시간을 쪼개 쓰는 피곤한 일상이 그를 만나면서 순간순간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되지만 점점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 욕심은 결국 그들을 이별로 데려가기도 한다. 확신이 없었던 사랑에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나서야 진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큰 싸움도 없이 그저 사랑에 수명이 다해 헤어진 이별 조차 쉽게 정리가 안 되기도 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순간에는 누구나 그 감정이 영원할 거라 믿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믿을 수 없게 쫙 갈라져버린 관계의 금은 이해할 수 없음으로 답답하게 만들고, 상처받고 좌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계절이 떨어지듯,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자고 나면 새날, 자고 나면 새 바람, 자고 나면 떨어지는 계절.. 그 영원하지 않음에 용기를 얻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책에는 <연애의 참견>에서 보여졌던 그렇게 독하고,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는 없다. 조금 더 담백하고, 잔잔하게 어른스럽게 풀어 나가는 사랑에 관한 여러 단상들을 담고 있다.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접해 왔던 경험으로 수많은 감정을 일으키는 연애의 순간들에 대해 풍부한 사유를 보여준다. 사랑에 정해진 룰이나 정답은 없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는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사랑을 하며 나를 지키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이 끝난 어제도, 사랑에 괴로워하는 오늘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페이지는 차곡차곡 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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