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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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람들은 급박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거짓말을 잘하지는 못하는 법이에요. 게다가 큰 거짓말을 하려면 큰 기량이 필요하지요."
오카쓰도 날카로운 말을 한다.
"그러니 만일 도련님을 거꾸러뜨릴 만한 큰 거짓말쟁이를 만나시거든 대인을 만났구나 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하지요."
만약 거짓말 뒤에 절실한 이유가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이유까지 들어 보면 어떨까요? 특이한 괴담 자리의 듣는 이로서는 더없이 뿌듯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 '눈물점' 중에서, p.27~28

 

미야베 미유키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그려내는 시대 미스터리물은 벌써 꽤 많이 출간되었다. 미야베 월드 2막으로 출간되는 시리즈가 이번 신작으로 스무 권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흑백의 방'에 이야깃거리를 가진 손님을 초대해 괴담을 들어주는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는 <눈물점>으로 여섯 번째 작품이 되었다. 2012년에 출간되었던 <흑백> 이후, <안주>, <피리술사>, <삼귀>, <금빛 눈의 고양이>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12년을 이어오고 있는 시리즈이다. 특히나 이번 신작에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물이 바뀌면서 새롭게 시리즈가 다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시마초에 자리 잡은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 그곳의 주인장 이헤에의 조카딸인 소녀 오치카가 그 동안 흑백의 방에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했었다. 듣고 버리고, 이야기하고 버리고. 손님은 이름을 대지 않아도 무방하며 세세한 부분을 숨겨도 상관없다는 것이 규칙이다. 한 번에 한 명, 또는 한 무리의 이야기꾼이 가게 안쪽에 있는 흑백의 방에서 독특한 괴담을 풀어낸다. 마주 앉아서 귀를 기울이며 듣는 이도 단 한 명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결코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흑백의 방을 찾아와 괴이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듣는 역할을 맡아 온 오치카가 올해 봄에 시집을 가게 되어, 다음 듣는 이는 이헤에의 차남 도미지로로 바뀌게 되었다. 도미지로는 솔직하고 마음씨가 착하지만, 그 동안은 빈둥빈둥 지내며 부모에게 얹혀사는 한량 같은 인물이었던 터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는 분위기가 꽤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자부로는 놀라서 숨을 멈추었다. 때마침 안개가 크게 후퇴하자 벚나무 숲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꽃보라가 춤을 춘다. 어제로 매화의 만개는 끝나고, 오늘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다니. 역시 이곳은 이 세상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다르다. 음식이 하룻밤 만에 썩어 버리는 이유도 그 탓이 아닐까. 두려움과 당혹으로 심장이 목구멍을 지나 튀어나올 만큼 세차게 두근거린다. 그런데도 만개한 벚나무 숲의 풍경은 얄미울 정도로 아름다워서 진자부로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곳은 대체 어디일까. 왜 우리는 이처럼 이상한 장소에 갇히고 말았을까.      -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 중에서, p.465~466

 

도미지로를 찾아온 첫 번째 손님은 그의 어릴 적 친구인 하치타로였다. 어린 시절 두부 가게를 운영했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그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그의 가족은 스물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팔남매에 각각의 아내와 남편, 약혼자까지 함께 두부 가게 마메겐에서 함께 일하며 먹고 살았던 대가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첫째 형수가 둘째 사위의 방에서 몰래 나오는 광경이 목격되고, 이후에는 둘째 형수가 셋째 누나의 남편을 덮치는 일이 벌어진다. 이상한 건 정작 당사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첫째 형수와 둘째 형수의 얼굴에 생긴 눈물점이 의혹의 대상이었다. 크기는 점만 한데 사람의 피부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면 얼른 종적을 감추는, 마치 벌레와도 같은 눈물점에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매년 묘지로 조성된 언덕에서 꽃놀이를 하는 것이 관례였던 벚꽃 마을에서 유일하게 여자들만 그 꽃놀이에 갈 수 없었던 사정, 길 위를 달리는 파발꾼을 뒤따라오는 정체 모를 괴이한 존재의 비밀, 가마카쿠시를 당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대저택에 갇히게 된 각기 다른 신분의 세 사람에게 벌어진 일까지 이 작품에는 단편 세 작품과 중편 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번 책으로 31화까지 이야기를 했고, 괴담은 99화로 완결할 예정이라고 하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에도 시대물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설레인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호러라는 장르에는 죽음을 의사 체험하게 함으로써 일상의 빛남을 거꾸로 조명하는 효과가 있다고, 자신에게 괴담은 그런 소중한 감정을 환기시키게 만드는 장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미야베 월드 2막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오싹한 괴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스로를 용서하고 치유 받게 되거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이해를 받게 되는 따스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가슴 속에 맺혀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평온을 얻게 되거나,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를 통해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분이 뭔가 위로도 되고, 일상에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이 시리즈를 이리 오래도록 찾아서 읽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미시마야 시리즈의 다음 편을 이미 올 초부터 월간지에 연재 중이라고 한다. 도미지로가 다음 번에는 또 어떤 손님을 맞아, 어떤 괴담을 듣게 될 지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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