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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 올리버 색스 평전
로런스 웨슐러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8월
평점 :
한번은 올리버가 동료들 앞에서 한 환자의 사례를 정확하고 신중하게 설명했는데, 내가 보는 견지에서 - 나는 때마침 그 자리에 있었다 - 그의 임상적 기술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동료들은 별다른 감응이 없는듯 싶었다. 그는 엄청난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가끔 그런다. 올리버의 가장 대단한 점은, 예술과 과학을 재결합하려는 욕구가 강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람들을 분개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빌어먹을, 그는 과학자가 아니야. 그의 저술에서 예술과 언어의 유희를 발라내야 해." p.68
로런스 웨슐러는 <뉴요커>의 전속작가로서 올리버 색스의 전기를 집필 중이었다. 로런스 웨슐러와 올리버 색스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했고, 그는 약 15권의 노트를 인터뷰 내용으로 빼곡히 채웠다.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올리버는 그에게 전기 집필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색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전기를 완성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30년도 훌쩍 넘게 중단되었던 올리버 색스의 전기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이 책은 올리버 색스의 30년 지기 절친한 지인이자 전기 작가인 로런스 웨슐러가 쓴 올리버 색스 평전이다. 자서전 <온 더 무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올리버 색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담겨있어서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고맙습니다> <깨어남> <나는 내 침대에서 다리를 주웠다> <편두통> 등 올리버 색스가 남긴 작품들의 집필 과정과 출간에 이르는 배경 등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특별한 점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서전'이라는 형식과 '평전'이라는 형식이 갖고 있는 장단점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평전'이라는 것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 같다.
그의 말을 들으니 문득 가슴이 뭉클한다.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경과의사가 아니라 임상존재학자이며, 그가 주로 사용하는 진단용 질문은 "어디가 아프세요?"가 아니라 "어떻게 지내세요? How ara you?", 즉 "어떻게 존재하세요? How do you be?"다.
"나는 키르케고르 철학자로서, 개인이라는 범주를 다뤄. 그러므로 나는 개인을 치료하는 의사이지, 신경계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야. 때로는 개인과 신경을 함께 돌보기도 해. 그러나 나의 공놀이 상대는 신경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이야." p.328
나는 로런스 웨슐러가 올리버 색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그의 인간적인 면모나 소소한 성격, 생활 환경 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좋았다. '색스는 비이성적인 것을 낭만적으로 사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성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지도 않는다(p.26)' 라든가, '나는 그에게 말을 걸 때, 가끔 이 친구가 딴 사람에게 대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골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대화상대인 나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p.75) 라는 식의 표현들에서 색스에 대한 애정 어린, 그리고 섬세한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던 것 같다. 로런스 웨슐러는 올리버 색스 만년의 공개 강연 프로젝트를 주도했으며, 암과 싸우던 올리버 색스의 곁을 올리버의 연인이었던 빌 헤이스와 함께 끝까지 지켰다.
이 책에는 올리버 색스와 교감을 나눈 수많은 인물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어, 올리버 색스라는 한 인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만날 수 있다. 영국의 시인 톰 건, 올리버의 가장 가까운 친척, 올리버와 함께 병원에서 근무했던 마지 콜, 고서 수집상이자 올리버의 죽마고우인 에릭 콘, 저명한 내과의사이자 희극 배우인 조너선 밀러 등등 다양한 시기에 올리버와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저자가 올리버와 함께 나눈 전화통화, 그가 손으로 쓴 편지, 대화 내용 등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그의 업적에 관한 내용뿐만 아니라 진짜 한 인간적인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어떤 종류의 소설책이 청년 올리버를 사로잡았는지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올리버는 는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셰익스피어와 <모비딕>만 있으면 족하다고 말한다. 한 편집자가 자신에게 헤밍웨이처럼 여백의 미를 추구하라고 했다는 이유로, 헤밍웨이를 무척 싫어했고, 디킨스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삶 자체였으며, 자신은 셰익스피어를 구구단표와 함께 외웠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올리버에게 존재함은 곧 행동함이었다'는 저자의 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올리버 색스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이 책을 읽어야 비로소 올리버 색스에 대해서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