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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척 무례했던 너에게 안녕 - 칠 건 치고 둘 건 두는 본격 관계 손절 에세이
솜숨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평점 :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인 걸 '알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 데 쏟아부을 체력도, 시간도 이젠 없다. 무엇보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도 없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일 따위 더는 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낮부끄러움에 몸소리가 쳐진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관계에 집중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더 실컷 좋아할 수 있도록 그 밖의 관계는 정리하는 게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더는 지름길이리라. p.20
본업은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온라인에서는 '솜숨씀'이라는 부캐로 활동하며 매일 조금씩 근력과 글력을 기르며 심신을 단련 중이라는, 저자의 첫 에세이이다. '솜숨씀'이라는 독특한 필명도 흥미롭지만, '칠 건 치고 둘 건 두는 본격 관계 손절 에세이'라는 부제목도 눈길을 끌었다. 저자는 말한다. '알고 보면 착한 사람,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 알고 보면 여린 사람 등 그 동안 관계를 이어온 '알고 보면 좋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그들은 대체로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무례하고 조심성이 없었다고. 싫은 사람은 그냥 싫어하면 되고,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면 될 텐데, 우리의 사회 생활이라는 게 그렇게 딱딱 맞아 떨어지면서 정리되는 게 아니라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은 이제 됐다는 이 책의 첫 번째 글부터 공감이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그녀는 너무도 만만해서, 좋은 게 좋은 거란 후려치기에 어물어물 넘어갔지만, 이제는 못들은 척 못 본 척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지만, 그거야 너한테나 좋은 거지' 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뭔가 시원하고 통쾌한 기분 마저 들었다. 사실 좋게 좋게 넘어가면 언젠간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탈이 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사회 생활에서 사용하는 저런 식의 표현이란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대충 얼버무리거나, 바꾸자니 번거로우니 그 동안 해온 대로 하자는 식의 무사안일 주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도 아닌 건 절대 안 되는 것이고, 싫은 건 그냥 싫은 거라는 걸 받아 들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자. 좋은 게 좋은 거지,는 한 개인의 노력과 정당한 주장을 무마하는 말이다. 나만 참고 지나가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면 모든 것이 순조로우리라는 상대의 이기적인 말에 쉽게 넘어 가지 말자.
좋아하는 일을 하던 사람에게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찾아오기도 하고(좋아하던 일이 싫어지는 경우가 제일 많지만....) 잘하는 일을 하던 사람에게는 잘하던 일이 좋아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이든 잘하는 일이든 우직하게 가다 보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오랜 시간 맑고 깊은 맛을 내는 순간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꼼수 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힘을 줘야 할 땐 힘을 주고, 힘을 풀어야 할 땐 힘을 풀면서. 그렇게 내가 원하는 인생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는다. p.115~116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이 많고, 아는 지인들이 많아야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이를 점점 먹을 수록 쓸데없는 인간관계들은 자연스레 정리가 된다. '인맥이라든지 네트워크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인간관계에도 미니멀리즘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저자의 깨달음은 아마 비슷한 나이대의 직장인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만 친해 보이는 여러 사람보다는 진짜 내 편이 되어줄, 나를 이해해주는 한 두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애기다. 그렇다면 관계를 어떻게 덜어내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저자는 관계를 아주 단순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원인과 결과, 문제와 해결책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도움이라곤 하나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내 인생에서 밀어내는 절차를 간략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 책에서 알려주는 인간관계 단순화 방식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타의에 의한 관계에서 벗어나 온전한 내가 되어보는' 길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게 인생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관계에 있어 선택과 집중하기를 알게 된다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새삼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내가 확실히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