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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 이기적인 년 - 날카로운 직감과 영리한 태도로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캐런 킬거리프.조지아 허드스타크 지음, 오일문 옮김 / 놀 / 2020년 8월
평점 :
일단 이건 분명히 해두죠. '망할 놈의 예의 따위' 정신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꺼져!"라고 외치라는 게 아니에요. 타인이 내 영역을 침범할 때 쓸 수 있는 한 가지 전략이에요. 잘못은 그 사람이 먼저 했죠. 이 구역의 멍청이는 그놈이에요. 우리는 그냥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거고요. 멍청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그들은 상대가 두려워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자만할 거예요. 내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자고요... 그놈이 성질을 내면서 "나쁜 년!"이라고 외쳐도 우리는 나쁜 년이 아니에요. 우리가 옳으니까요. p.67~68
이 책의 저자인 캐런 킬거리프와 조지아 허드스타크는 전 세계 2천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화제의 팟캐스트 〈My Favorite Murder〉의 진행자이다. 범죄와 코미디를 주제로 한 이 팟캐스트로 두 사람은 미국 여성들이 믿고 따르는 멘토이자 '센 언니'가 되었다. 캐런은 코미디 작가였고, 조지아는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다. 그러다 우연히 범죄 사건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것이 팟캐스트의 시작이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거침없고, 직설적이면서도 사이다 같은 통쾌함이 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라든가, '망할 놈의 예의 따위', 내지는 '내가 막 살아봐서 아는데', '지랄을 해야 한다'는 식이다. 예의에 대한 사회적인 강박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조지아의 이야기, 캐런의 이야기로 각각 자신의 경험담과 솔직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각각의 이야기 뒤에는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해서 같은 주제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마치 팟캐스트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듯한 기분을 안겨 준다. 특히나 예의와 친절의 차이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고, 공감도 되었다. 예의는 문화의 산물일 뿐이지만, 친절은 타인에 대한 마음이나 호의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예의는 상상 속 커튼에 지나지 않지만, 친절은 식탁에 차린 집밥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내 말에 그 멘토는 내 뺨을 한 대 후려치려는 듯한 반응을 보였어요. 그리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진리를 말해 주었죠. "동기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 일들을 그냥 해요."
아하! 그래서 난 꾸물거리는 몸을 이끌고 스피닝 수업에 가서 '그냥' 동작을 따라 했어요. 모든 동작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냥 했죠'. 사실 지금도 매니큐어나 칠하면서 오디오북이나 듣고 싶은데 마감이란 게 있으니까요.... 핵심은 이거예요. 모든 여건이 완벽하게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말자. p.176~177
이 책은 파란만장한 과거에 대해 얘기하는 걸 창피해하지 말라고 한다. 굴욕적인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자중할 수 있게 되고, 수치심을 몰아내면 카타르시스가 찾아올 거라고. 어리석었던 과거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고 말이다. 실제 이 책에서 두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섭식 장애, 불안 장애, 우울증,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사이비 종교 등 극단적인 경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듭된 실패와 불행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온 두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그런지, 뻔한 위로나 진부한 카운슬링이 아니었다.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다정하고 유쾌했다.
무엇보다 어릴 적부터 ‘얌전히, 착하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를 강요 받아 은연중에 자신의 욕구나 안전은 뒷전으로 미뤄왔을 여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는 글들이라 좋았다. 그리고 범죄의 피해자, 희생자가 된 여자들이 사회적으로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으로 비난 받는 것에 대해서도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 성폭행을 당한다면 피해자가 부주의했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빌어먹을 범죄자가 그 사람을 선택한 것이지. 강간, 성희롱, 폭력 등 여성에게 너무나 나쁜 일이 벌어져도 가해자가 온데간데없는 경우에 분노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을 진짜 살아본 언니들의 카운슬링을 만나 보자. 당신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망할 놈의 예의 따위' 정신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원치 않는 힘겨운 상황이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당당하고 용기 있게 맞설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