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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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주의 심장에 들어앉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증거를 찾고 있다. 지금까지 그것을 조사하거나 드러내려는 거의 모든 시도가 허사로 끝났을 만큼 이 존재는 불가사의하다. 빛과의 상호작용 일체를 거부하고, 심지어 존재 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이것에 붙은 이름은 '암흑물질'이다. 젊은 물리학자가 암흑물질을 연구할 수 있는 장소는 지하 900미터 아래에 암염, 석고, 백운석, 이암, 미사암, 사암, 점토와 표토층으로 차단된 이곳 언더랜드뿐이다. 별을 보기 위해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땅속 깊이 내려와야만 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모순이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다.    p.65~66

 

어릴 때부터 항상 심해가 궁금했었다. 심해란 바다의 깊이가 200미터 이상되는 아주 깊은 바닷속이다. 햇빛이 들지 않아 매우 깜깜하고, 물의 압력도 높아, 심해에 사는 생물은 일반적인 어류에 비해서 모양도 특이한 것들이 많다. 빛이 들지 않을 만큼 깊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보면 지구의 어디까지 닿을 것인지 궁금했었다. 비행기를 타면서 구름 위의 풍경이 어떤지도 보았고, 국내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에도 가봤으니 높은 곳에 대한 호기심은 어느 정도 채웠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심해, 동굴, 지하 세계를 일반인이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전무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너무 궁금했었다.

 

집필하는데만 6년이 걸린 이 책은 물질, 신화, 문학, 기억, 그리고 대지에 존재하는 지구의 방대한 지하 세계를 탐험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수상 경력도 화려한 자연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은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에 주목한다. 사실 '일상적인 비유에서 높이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깊이는 경멸의 대상이다. 상승하는 것이 가라앉거나 끌어내려지는 것보다 선호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강은 일말의 상식과 정신의 물매를 거스르는 반직관적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얼음은 기억한다. 그것도 자세히, 그리고 100만 년 이상 기억을 간직한다. 얼음은 산불과 해수면 상승을 기억한다. 얼음은 1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 공기의 화학적 조성을 기억한다. 또 5만 년 전 여름에 며칠이나 햇빛이 비추었는지를 기억한다. 홀로세 초기, 눈이 내린 순간의 구름 속 온도를 기억한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산, 1783년 아이슬란드의 라키 화산, 1482년 미국의 세인트헬렌스 산, 1453년 남태평양 바누아투의 쿠와에에서 일어난 폭발을 기억한다. 얼음은 로마의 제련 유행을 기억한다. 얼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몇십 년 동안 휘발유에 들어 있던 치명적인 납의 양을 기억한다. 얼음은 기억하고 말한다. 우리가 빠른 변화와 신속한 역전이 가능한 변덕스러운 행성에 살고 있다고 말해준다.    p.364~365

 

로버트 맥팔레인은 15년 넘게 경관과 인간 마음의 관계에 대한 글을 써왔다고 한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의 얼음 덮인 정상에서 출발해 아래로 내려가는 궤도를 따라 지하공간까지 모두 탐험했다. 이 책은 지하 900미터 아래에 있는 암흑물질 실험실에서 시작해, 앞으로 10만 년 동안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설계된 깊은 저장고에서 마무리가 된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5,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영국의 서머싯 마을로 갔다가, 약 1만 2,000년 전의 이스라엘 북부 힐라존 강을 거치고, 약 2만 7,000년 전 오스트리아령 다뉴브강으로 이어진다. 지질학적인 탐험 과정과 고고학적인 과거의 역사를 두루 살피고, 현재의 다양한 관점이 포개지는 심원의 시간 여행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대단히 전문적인 정보들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분명 실제 탐험을 통해서 경험한 여정을 그리고 있음에도 너무도 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줄기가 갈라진 오래된 물푸레나무 미로 아래를 따라가고, 물에 침식되어 벌어진 틈이 땅속 깊이 들어가며, 거기서 새로 갈라진 길이 마치 펼쳐진 옷감의 주름처럼 굴곡진다. 저자가 묘사하는 여정을 너무도 세밀하고, 아름답고, 그림처럼 눈앞에 묘사되어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언더랜드를 탐험하는 듯한, 그 어둠 속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분, 광산, 숲, 도시, 빙하, 동굴 등지 등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더랜드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엿보는 재미도 대단했고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이 아름다운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그야말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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