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밤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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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듣는 순간 망연자실해지고, 죽음은 절대 돌이킬 수 없으며, 그걸로 끝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는다. 내 세상은 산산이 부서졌고 우리는 절대 예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이 모든 사실을 길어야 몇 초 안에 다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온몸을 흘러넘치며 우리를 압도한다. 가슴이 갈가리 찢기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온몸 구석구석이 항복하고 무너지길 원한다... 그때 부정이 끼어든다. 부정은 우리를 구원한다. 부정은 보호막을 펼친다. 부정은 창문에서 뛰어내리려는 우리를 붙잡는다.      p.229

 

15년 전, 열여덟 살의 냅은 다른 마을에서 열리는 아이스하키 시합에 참가했다 경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그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쌍둥이 동생 리오가 있었고, 소울 메이트라고 생각했던 여자 친구 모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날, 리오와 그의 여자친구 다이애나가 기차에 치여 즉사한다. 그들의 체내에서 다량의 알코올과 약물이 검출됐고, 술과 마약에 취한 두 고등학생이 선로 위에서 무모한 짓을 하다 사망한 사고였다. 그리고 사나흘 뒤, 냅의 여자 친구 모라가 사라져 버린다. 동생의 죽음과 여자 친구가 행방불명되어 버린 기억은 냅의 삶을 지배했고, 그는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냅은 경찰이 되었고, 모라의 지문과 DNA를 시스템에 등록하지만, 그녀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사가 그를 찾아 와 살인 사건 현장에서 모라의 지문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게다가 살해된 것은 모라와 그의 고등학교 동창인 렉스였고, 렉스 역시 경찰로 일하던 중이었다. 가족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고, 미래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는 고독한 삶을 살고 있던 냅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간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15년 만에 나타난 모라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마을 근처의 버려진 군사 기지와 동생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시 리오는 음모론 클럽의 멤버였고, 여섯 명의 멤버 중 세 명이 죽고, 한 명은 실종되었던 것이다. 냅은 나머지 두 명의 멤버들을 찾기 시작하면서, 도시 괴담과도 같았던 버려진 군사 기지의 비밀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우리는 각자의 서사에 부합하는 부분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시한다고 했던 말 기억하는가? 지금 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실은 그러고 싶지 않다. 무시하고 싶다. 베스는 내게 경고했다. 내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그 말이 어떻게 사실이 되었는지 베스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마음 한편으로는 레이놀즈와 베이츠가 처음 우리 집 문을 두드리던 때로 돌아가서 난 렉스를 모르느 그냥 가라고 얼른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 외면할 수 없다.      p.406~407

 

할런 코벤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따지고 들자면 법을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범죄에 연루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그런 비밀을 남보다 잘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이 과연 사실인가.에 있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이니까.

 

할런 코벤의 작품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마치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서서히 상승하는 이야기가 클라이막스에 치달을 때까지 지루할 틈이란 단 한 순간도 없다. 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상) 최초 석권, 스릴러의 제왕, 반전의 대가 등 할런 코벤을 수식하는 단어들이 그 명성만큼의 재미를 고스란히 안겨준다. 평범한 우리의 주인공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숱한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의 문제, 배신과 질투와 거짓말과 진실 사이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가족 간의 믿음과 비밀, 연인 간의 신뢰와 사랑에 대한 팽팽한 긴장과 싸늘한 관계의 반복에서 오는 장르적인 재미는 그야말로 할런 코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으니 말이다. 이 작품 역시 읽는 내내 다음 장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게 만들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시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바쁘게 만들었다. 비밀과 배신, 반전과 폭로야 말로 스릴러의 재미를 보장하는 키워드가 아닌가. 후덥지근한 날씨를 잊어 버리게 만들어줄 시간순삭 소설이 만나고 싶다면 할런 코벤의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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