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함께 빵을 에프 그래픽 컬렉션
톰 골드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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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재에 가득 쌓여 있는 책들을 별 생각 없이 둘러볼 때가 있다. 너무 좋아서 여러 번 읽었던 책도 있고, 괜히 읽었다 싶을 만큼 실망스러웠던 책도 있다. 곧 읽을 예정인 책도, 반쯤 읽다 지루해서 덮은 책도 있고, 읽었지만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책도 있다. 언젠가는 꼭 읽으려고 아껴두고 있는 책도 있고, 샀지만 읽게 되지 않을 것 같은 책도 있다. 그 중에는 읽지 않았음에도 다 읽은 것처럼 알고 있는 책도 있고, 다른 버전으로 읽었지만 합본 혹은 리커버 버전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구매한 책도 있다.

 

책이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습관적으로 장바구니에 신간들을 담고 있는 나 같은 독자라면 무조건 공감하고, 열광할만한 작품을 만났다. 최근에 책 컬렉터이자 작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랜트 스나이더가 쓰고 그린 만화 에세이 <책 좀 빌려줄래?>라는 작품을 읽었었는데, 그 책과 비교해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랜트 스나이더의 책이 탐독가로서의 책 소장과 책 읽기에 대한 글들과 작가로서 느끼는 창작의 기쁨과 고통을 장난스럽고,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데 비해, 이번에 만난 톰 골드의 책은 최신 문학 트렌드와 문학계와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두 작품 모두 책덕후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작품이라는 점은 같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만화계의 아카데미인 아이스너상 수상작으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 연재된 책과 문학에 대한 '유머 카툰' 컬렉션이다. 저자인 톰 골드는 ‘애서가들의 만화가’로 유명한데 국내에도 그의 대표작 <골리앗>을 비롯해 그래픽노블 작품들이 몇몇 출간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개성 있는 그림체와 기발한 풍자와 해학으로 유머와 작품성으로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나 그는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 작가로 유명한데, 덕분에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현대 추리 소설 작가들을 위한 살해 방법 몇 가지, 극적이지 못한 줄거리 구성 네 가지, 소설가를 위한 키보드 단축키 모음, 전형적 여주인공의 아홉 가지 유형, 해골 부대의 습격으로 인한 세계 종말의 위기 속에서 당신의 소설을 출간시키는 방법, 첩보 소설 원고를 출판사에 전달하는 방법, 제임스 본드 신간 소설 속 몇 가지 유감스러운 오류, 창의적인 작가를 위한 미루기 기술, 10주 과정 등등.. 제목만 보더라도 내용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기발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카툰들이 담겨 있어 너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 분석, 출판사의 비용, 작가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 출판계의 트렌드, 서점, 저널 등 책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각각의 분야에서 비틀고, 풍자하고, 거침없는 농담으로 보여주고 있는 카툰들은 그야말로 '고품격 유머'로 가득하다. <전쟁과 평화>의 낚시성 홍보 문구들은 기발했고, 회고록 집필자의 삶은 너무 웃기면서도 현실적이었고, 셰익스피어 시대의 진정한 극장 경험을 선택할 수 있는 여섯 장의 카드는 그의 문학적 지식과 만화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었다.

 

집 안 곳곳에 책들이 쌓여 있고, 점점 어수선해지는 서재에 들어 가려면 발 디딜 곳부터 만들어야 하고, 책으로 인간관계를 대신하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책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단 몇 컷의 만화로, 혹은 한 컷으로 그려내는 '책을 위한, 책에 의한 톰 골드의 세계'를 만나 보자. 책을 사랑하는 바로 당신을 위한 엉뚱하지만 너무도 멋진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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