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배신 스토리콜렉터 84
로렌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준비를 하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애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하니까 미안해서 말이 안 나오더라. 우리 아들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미어졌어. 사랑, 날것 그대로의 순도 높은 사랑이 내게로 밀어닥쳤어. 비행기가 충돌하면서 당신을 데려갔지. 그건 내 세상을 철퇴로 후려갈겼지만, 내게 아직 세상이 남아 있는 건 제이미 때문이야. 그 애마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p.108~109

 

갑작스런 비행기 추락 사고로 남편 마크가 죽고 한 달이 지났다. 커다란 저택 안에 남겨진 건 테스와 일곱 살짜리 아들 제이미뿐이었고, 그것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픔 속에서 유일하게 안도감을 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슬픔에 젖어 있는 그녀에게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력이 없다. 그저 아침에 제이미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 정도만 할 뿐 가끔은 아이의 끼니를 챙겨주는 걸 잊어 버리기도 하고, 사소한 걸로 아이에게 화를 냈다가 금방 후회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마크의 형 이안이 찾아와 생전에 남편이 자신에게 빌린 돈이 있으니 갚으라며, 유산 집행을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테스는 산더미를 이룬 서류와 각종 우편물 등에 손을 댈 엄두가 안 나고, 약 때문인지 자꾸 사소한 것들을 잊어 버리곤 한다. 제이미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테스는 머릿속으로 마크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겨우 일상을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사별 전문 상담사라고 자신을 밝힌 셸리가 집으로 찾아 온다. 그녀는 꾸밈없고 친근한 스타일에 외모도 예쁘고, 밝은 성격의 30대 중반 여성이었다. 4년 전에 네 살 된 아들을 희귀 백혈병으로 먼저 보내야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셸리는 금방 테스와 가까워진다. 테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대신 나서서 일을 처리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 갔고, 그녀 덕분에 웃음을 잃었던 제이미까지 활기를 되찾게 된다. 그렇게 한달 정도가 지나갔고, 제이미는 엄마보다 셸리 아줌마를 더 찾으며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고, 테스는 조금씩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녀의 주위에서 계속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한밤중에 집으로 걸려오는 이상한 전화, 자신을 미행하는 의문의 남자.. 등은 테스를 점점 정신적으로 압박하고, 과연 그녀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헛것을 보는 것일까, 아니면 슬픔과 고통으로 인한 피해망상인 걸까. 그녀는 이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제이미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때 내 시야 가장자리에서 뭔가가 움직였어. 잠깐이었어. 어둠뿐이어야 할 정원에서 빛이 번쩍했어. 살갗에 소름이 돋고 웃음이가 사라지는 데는 그거면 충분했어. 난 다리미대를 떠나 창으로 다가갔어. 한 장짜리 유리창 안으로 싸늘한 공기가 스며들어. 밖은 칠흑처럼 어두워서 검은 거울에 코를 맞대고 서 있는 기분이야. 반사된 전등빛과 거실 소파와 텔레비전을 보는 제이미가 비쳐 보여. 내 얼굴이 보여. 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튀어나온 광대뼈와 멍하니 응시하는 텅 빈 눈동자.     p.279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로렌 노스는 이 작품으로 영국 심리 서스펜스 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작가가 심리학을 공부하며 인간 관계의 어두운 면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여성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었다. 보통의 주인공의 내면 묘사에 치중을 하더라도, 다른 한 축에서는 서사를 이끌어 가는 다른 인물이 있거나, 상대의 내면 묘사를 교차 진행하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독특하게 오직 한 인물의 시점에서만 사건의 모든 서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깊이 있게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는 대신, 주인공 캐릭터가 공포와 혼란, 불안과 분노에 휩싸인 상태로 스스로도 믿지 못하고, 주변 인물들에게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어 감정 이입을 할 경우 조금 답답한 느낌은 들 수 있을 것 같다.

 

후반부에 강력한 반전에서 오는 충격이 있기에, 이야기를 읽는 내내 작가가 세심하게 배치한 복선들을 따라가며 읽는 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피해망상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모성이라는 감정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무더운 여름 밤에 읽기에 딱 제격이다. 슬픔과 상실감으로 시작해 오싹한 공포와 스릴을 배경으로 가족과 모성이라는 감정에 다다르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들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