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델프트의 구시가는 동화 속처럼 아름다웠다. 좁은 운하가 구불거리며 구시가를 감싸고 있었다. 운하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비쳐서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동그란 아치형의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너다 보니 어느새 구시가의 한복판에 있는 마르크트 광장이 나왔다. 이 광장에 면한 골목길에 페르메이르 기념관이 있다. 여행지에서 길을 찾는 데는 영 젬병인 내가 한 번도 헤매지 않고 바로 닿을 정도로 델프트는 작은 도시, 아니, 마을에 가까웠다. 저 투명한 물빛과 하늘빛을 화가도 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마음속에서 적요한 파문을 일으켰다.      p.90~91

 

클래식 클라우드 그 스물 한 번째 작품은 바로 '페르메이르'이다. <진주 귀고리 소녀>, <우유를 따르는 하녀> 등의 작품으로 너무도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생애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화가이기도 하다. 200년이 넘도록 기억에서 잊힌 채 그저 델프트의 화가로만 남아 있었고, 사후에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그의 작품들이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지만, 동시대의 화가인 렘브란트가 약 2,000점의 작품을 남긴데 비해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단 30여 점 정도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1675년 사망한 후 200년 넘게 망각 속에 가라앉아 있던, 베일에 싸인 페르메이르의 삶과 내밀한 작품 세계가 어떨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수백 년간 우리 곁에 존재하며 '클래식'으로 남은 세계적 명작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작품들에 좀 더 쉽게 다가가 지금 여기, 우리의 눈으로 공감하며 체험할 수는 없을까. 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문학, 예술, 철학,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인문기행 프로젝트는 12개국 154개 도시를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0인을 통해서 만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로 시작되었던 여정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작된 지 이 년이 넘었고 어느 새 스물 한 번째 작품에 이르렀다. 이번 '페르메이르' 편은 초반에 '클림트' 편을 함께 했던 전원경 작가가 다시 여정을 함께 해 더 반가웠다.

 

 

우리가 희미한 과거를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그 모습은 아마도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이 보여주는 세계와 엇비슷할 것이다. 한때 우리는 그토록 맑고 온화하며 신실한 세계에 속해 있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우리가 받는 인상, 〈진주 귀고리 소녀〉나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이 주는 깊은 아름다움과 아련한 슬픔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이제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지나간 날들에 대한 우리의 영원한 그리움이다.     p.276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의 여정은 페르메이르가 태어나 자라고 평생 활동했던 델프트에서 시작해 그의 작품 <골목길>과 <우유를 따르는 하녀>가 있는 암스테르담, <진주 귀고리 소녀>, <델프트 풍경>이 있는 헤이그를 거쳐 <회화의 기술>이 있는 빈, 그리고 만년의 그림들이 있는 런던에 이르기까지 거장의 흔적을 따라나선다. 뿐만 아니라 페르메이르의 모든 작품을 수록했고, 전원경 작가가 세심하고, 깊이 있게 그림들을 읽어 내고 있어 그야말로 페르메이르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 대해 흔히들 '그림이 반짝거린다'는 식의 표현을 많이 하는데, 그 광채 뒤에 숨어 있는 화가의 치밀한 연구와 색 배합, 빛의 효과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전원경 작가가 심도있게 설명해주고 있어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그림의 기법을 알려주고, 그림 속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의미를 해석해주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방식이라 마치 전문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평범한 여름날 아침의 풍경에서 천국을 끄집어낼 수 있는 화가가 페르메이르'라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 버리는, 그래서 놓치고 마는 그림 속 비밀들을 전원경 작가가 짚어내 주고 있는 진짜 여행 가이드인 셈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매번 거듭될수록 더 깊이 있어지고, 원숙해지고 있다. 덕분에 앞으로 계속 이어질 시리즈의 다음 작품들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늘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통해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을 만나 보자. 왜 <진주 귀고리 소녀>가 보는 이를 대번에 매혹시키는지, 평범한 풍경에 어떻게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인지, 이름은 잊히고 작품은 흩어진 화가의 진가가 되살아난 이유가 무엇인지 등등 수수께끼로 가득한 페르메이르의 삶과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