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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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사건의 경우 말도 안 되는 동기들, 상식에 위배되는 상황들, 믿기 힘든 우연들이 개입돼 있었다. 밥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인물이 알고 보니 잔인한 살인마인 경우도 허다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시해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다가 작은 실마리 하나가 발견되면서 뒤집어진 경우도 있었다. 세상은 가장 평범한 사건과 특수한 사건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상식과 비상식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케이트는 형사로 일하는 동안 여러 경험을 통해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전혀 말도 안 되는 가설이라고 하더라도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p.64

 

영국 북부의 항구도시 스카보로에서 열네 살 소녀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4년 전 할머니 생신이라 혼자 헐에 다녀오다가 기차를 놓친 이후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기고 사라진 한나 이후, 이번에는 수학여행 준비물을 사기 위해 엄마랑 마트에 간 아멜리가 주차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때 고원지대에서 1년 전 실종됐던 사스키아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한나와 사스키아, 아멜리는 비슷한 나이에 납치됐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이들 사건에는 별다른 목격자나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언론은 이들 사건을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고원지대 살인마'라는 별명을 붙여주는데, 수사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미궁에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 사라진 아멜리의 부모가 운영하는 펜션에 머물던 케이트가 부모의 부탁으로 비공식적인 단독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케이트는 스카보로 외곽에 있는 아버지의 집을 처분하지 않고 임대를 주고 있었다. 그런데 세입자가 집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는 무단으로 도주를 해버렸다. 그녀가 그 집을 팔지 말지 고민하다 팔지 못했던 이유는 부모님이 오래 살던 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잔혹하게 살해된 아버지 모두 세상에 없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건 그녀는 펜션에 머물면서 집안의 못쓰게 된 집기들을 처리하고, 집을 손보는 중이었는데, 마침 소녀들의 연쇄실종사건이 벌어지고 이번에도 수사에 관여를 하게 된다. 전작인 <속임수>에서 전직 형사 리처드 린빌의 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케일럽 형사와 케이트가 이번 신작 <수사>에서도 등장해 반가웠다. 샤를로테 링크가 시리즈로 작품을 출간한 적은 없지만, 동일한 등장 인물들이 같은 배경을 무대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속임수>와 <수사>는 시리즈로 보아도 무관할 것 같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면 더 좋을 것 같고 말이다. 스카보로의 담당 형사는 케일럽이고, 케이트는 런던에서 근무하는 형사라 사실 아버지의 사건은 물론이었고 현재 벌어지는 사건에서도 수사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그럼에도 전작에 이어 케이트는 런던경찰국에 긴 휴가를 내고 독자적인 수사를 진행시키게 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겉모습만 보고 타인을 평가하죠. 아마도 사람들은 당신을 의사 남편, 예쁜 딸, 근사한 저택, 넉넉한 경제력을 가진 여자로 볼 뿐 내면을 보려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다르다는 듯인가요?"
"나는 겉모습보다는 이면에 관심이 많아요. 물론 이면을 보기란 쉽지 않죠."
"당신은 내게서 어떤 이면을 보았는데요?"
알렉스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데보라를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p.169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샤를로테 링크의 소설은 독일 내에서만 3천만 부가 판매되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게다가 거의 모든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만큼 인기가 좋다고 한다. 여타의 스릴러들과 다른 점은 그녀의 이야기들은 매번 범죄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건과 수사라는 플롯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속에 관계된 여러 인물들의 삶과 심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양한 사회문제와 인간관계에 대해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깊이 있게 탐구해서, 세밀하게 그 심리를 묘사하고 있기에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페이지가 두툼한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 보다는 과정에 더 치중하는 작품답게, 전혀 지루할 틈 없이 매우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600페이지 분량의 이 작품 역시 중반을 넘어가도록 범인에 대한 제대로 된 단서 없이 그저 사건의 수사 과정과 사라진 소녀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감정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는 후반부에 도달해있고, 클라이막스와 반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케이트는 탁월한 상황 판단력과 뛰어난 직감과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형사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 동료들로부터 언제나 배척당해야 했다. 전작의 사건들이 3년 전이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그녀의 성격은 여전하다. 케이트는 여전히 동료들 사이에서 겉돌고 있었고,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대놓고 그녀를 멸시하거나 뒤에서 비난하는 동료는 없었지만, 아무도 그녀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려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심 거취를 옮기는 건 어떨지 생각해보던 차에, 케일럽 형사가 스카보로경찰서로 자리를 옮기면 어떻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사실 3년 전, 케이트는 그에게 반한 적이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사이라 친밀감을 갖게 되었고, 그는 외모도 매력적인 남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케일럽은 그녀의 능력은 인정했지만, 그녀를 여자로 보아주지 않았다. 당시 알코올중독과 싸우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를 극복했던 케일럽에게 케이트는 동료 경찰의 딸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케이트는 그와 함께 일하게 될 상황을 상상해보면 고통스러울 것 같아 거절한다. 만약 다음 시리즈가 또 이어진다면, 그때는 케이트와 케일럽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 지도 궁금해진다. 다음 작품도 꼭 이들이 등장하는 시리즈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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