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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평점 :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사람 별로 없어. 직장 생활 하는 사람 80퍼센트가 지금 다니는 회사 적성에 맞느냐고 물어보면 다 안맞는다고 그래. 죽지 못해 다닌다 그래. 이 사람들도 다 꿈이 있었어. 누구는 선생님 되고 싶었고, 누구는 가수가 되고 싶었어. 그 사람들은 아마 한번 포기한 꿈 이루려면 정말 힘들 거야. 나이 먹을수록 꿈에서 멀어질 거야. 그래서 마흔을 어느 소설에서는 '다시는 열 수 없는 문을 닫고 돌아서는 나이'라고 했어. 포기 못하고 내내 붙잡고 있던 걸 놓는 나이거든. p.88
<시방 상담소>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연재된 오디오 방송으로 욕쟁이 상담가 김수미가 10대부터 50대까지 일반 청취자를 대상으로 진로, 가족, 인간관계, 금전, 사랑 등 다양한 주제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방송이다. 이 책은 고민 키워드를 나, 일(직장), 가족, 인간관계, 돈, 사랑으로 정리하고, 방송에서 다 전하지 못한 저자의 쌍욕, 조언, 위로를 담고 있다.
한때 '욕쟁이 할머니'라는 컨셉으로 유명해진 식당들이 있기도 했는데, 겉모습은 불친절하지만 그 속에 할머니 특유의 친근함이나 유머가 있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미 배우님도 '국민 욕쟁이'라는 호칭을 얻고 있을 정도로, 속 시원하게 가식 없이 이야기하는 걸로 유명하다. '뭔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라는 표지 문구처럼, 살다 보면 정말 나도 모르게 '식빵'이 튀어나오는 경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의 모든 못된 것들을 향해, 사회의 온갖 부당한 처사들을 향해 정신이 번쩍 드는 욕 한 사발의 일침을 가해준다면 누구라도 속이 시원해질 것 같다. 게다가 인생 경력 71년, 결혼 생활 47년 차에 20년간 안방극장을 지켜온 배우이자 그만큼의 세월을 살아온 어른의 조언 아닌가. 그저 손맛이 좋아 요리 잘하는 배우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은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이 그래. 다치는 일이 많다 보니 힘들고 어려울 땐 반사적으로 가시를 세운다고. 근데 그러다 가까운 사람을 무시로 찌를 수도 있어. 베프라며. 너희들 말로 베스트 프렌드. 상황이 베드할 때 함께 하는 게 베스트 아니야? 욱하는 마음에 제일 좋은 걸 잃지 마.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에 힘든 시기가 와. 경제적으로든 심적으로든. 힘든 시기가 제일 지랄맞은 건 그때 좋은 걸 많이 잃게 되는데, 뭘 잃어버리는지 당시엔 모른다는 거야. p.234~235
'욕 반, 위로 반'이라는 김수미표 고민 상담은 다양한 고민의 종류만큼이나 버라이어티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 건 세상에 무궁무진하지만, 나를 부자로 만들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다.' '실수는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실수를 숨기면 나빠진다.' 라는 인생을 오래 살아본 선배로서의 깊이 있는 조언부터, 직장 상사가 성추행을 문자로 한다는 고민에 '내가 찾아갈게, 이 새끼 진짜 가만 안 둬.' 로 시작되는 함께 분노하기, 마흔 두 살 가장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다들 꿈꾸라고 말하는 시절에 정말 미안하지만, 그 꿈 접으라고, 일단 생계가 먼저'라고 냉정할 정도로 현실적인 문제를 똑 부러지게 짚어주기도 한다.
거침없이 욕하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혼내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말들이 가볍지 않고 진심으로 들린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고운 말, 예쁜 말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툭툭 내뱉지만 그 안에 감동이 있고, 너무도 진지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누군가 날 엿 먹일 때는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더 크라고, 단단해지라고, 강해지라고 세상이 주는 선물이라고, 다 경험이라고. 그런데 이미 충분히 크고 단단하고 강하다면, 니미 염병할 선물이고 뭐고 누가 달랬냐, 보란 듯이 걷어차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이게 바로 김수미표 고민 해결 방법이다.
들어줄 사람이 없어 더 앓는 지금 세대를 보고 내 평생 꼭 한 번은 고민 상담소를 열고 싶었노라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뭐든 혼자 하는 시대에도 그래, 그래, 하고 다 들어주는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 그러니까. 말해봐, 뭔데?” 그래서 고민 상담을 하자니 “못하겠어요” 하면 “하지 마, 관 둬!” 하고 “힘들어요” 하면 “그럼 망하세요”라고 하지만, 그 속에 '어른의 지혜'가 담겨 있다. 뻔한 위로나 명언 말고, 진짜 고민 해결법과 위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