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Marks 건축가의 스케치북
Will Jones 지음, 박정연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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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책의 페이지에 활자로 적힌 정보 이외에도 책의 무게나 종이의 질감과 두께감, 빛이 반사되는 방식, 심지어 책의 냄새까지 느낄 수 있다. 디지털 장치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즉각적으로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물리적 영역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이유이며, 왜 우리가 디지털적인 삶에 완전히 빠지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p.11

 

제목 그대로 건축가들의 스케치를 모아 놓은 책이다. 무려 60인 건축가들이 작업한 900여 장의 일러스트가 수록되어 있어 물리적으로도 묵직하고, 퀄리티가 뛰어나 소장가치도 있는 책이다. 연필, 펜과 잉크, 수채화, 색연필 등으로 그려진 다양한 스케치들은 건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도 감탄하며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이 책에 수록된 60인의 건축가들은 건축계의 떠오르는 스타부터 이미 명성이 자자한 건축가들까지 총 망라되어 있다. 스케치뿐만 아니라 핸드 스케치에 대한 인터뷰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더욱 흥미롭게 그들의 도면과 형태의 표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펜과 연필과 슬라이드를 잘 다루는 실무자를, 컴퓨터를 잘 다루는 3D 시각화 전문가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새로운 건물을 위한 설계의 모든 선이 그것을 손으로 그리는 한 개인으로부터 쏟아져 나왔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평면, 입면 및 단면이 플라스틱 마우스 부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디지털 표현 방식보다 스케치가 직관적인 실제 형태의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축가들은 스케치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종이로 꺼내놓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수록된 스케치들을 보다 보면 왜 이러한 것들이 3D 렌더링 된 조감도보다 훨씬 흥미로운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스케치가 건축가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축가들의 스케치가 모두 제각각이며, 각자의 개성을 표현 방식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똑같은 방식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아마도 같은 건축물을 함께 그리게 하더라도, 건축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스케치들이 그려질 것이다.

 

 

"건물은 평면적, 단면적, 3차원적으로 거의 동시에, 그리고 각각이 서로 다른 도면에 영향을 주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건물을 만드는 것은 퍼즐을 푸는 것과 같으며, 스케치는 그 과정의 초기에 이뤄지는 일부분이다. 아이디어가 형성될 때 스케치의 직관적인 아이디어는 완벽하지만,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스케치 형태로 개발한 아이디어를 디지털 방식으로 탐색해가며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p.207

 

손으로 그리는 드로잉은 설계 과정 내내 사용하는 언어라서 의사 소통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고 말하는 건축가도 있었고, 스케치를 설계 과정에서 일반적 개념을 추출하고 디자인의 디테일을 만드는 용도로 활용한다고 말하는 건축가도 있었다. 스케치 또는 드로잉의 과정은 그 자체로 예술적인 과정이며, 마음속의 생각을 제3자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하는 건축가도 있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건축물들을 스케치를 통해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각각의 건축가들이 진행했던 주요 프로젝트의 성격이 다르고, 스케치 작업을 하는 방식 또한 각양각색이라 더욱 흥미롭다. 이 책 자체도 커다란 스케치북 사이즈라서 펼쳐놓고 보기에 딱 좋다.

 

어떤 건축가는 스케치와 도면이 함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스케치를 바탕으로 도면을 그린 다음 또 스케치를 하는데, 종종 도면 위에 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계와 재설계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하는데, 건축가의 손과 연필이 마음과 이어져 있는 방식이 스케치로 차곡차곡 표현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건축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했고, 일을 했던 비전문가 독자인 내가 읽기에도 이렇게 흥미진진한데, 건축학과 학생들이나 실무자들에게는 이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건축스케치를 공부할 때 참고 자료로도 매우 훌륭할 것 같고, 그저 건축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보기에도 굉장히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스케치와 드로잉을 통해 보여지는 빛나는 아이디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의 세계가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언젠가 건축 관련 일을 할 예정이거나 현재 공부 중이라면 이 책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소장가치 100프로의 아주 굉장한 자료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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