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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가만있어, 그 사람에게 속삭였다.
약해지면 안 돼, 나에게 속삭였다.
왜냐면
우는 건
룰에 어긋나니까. p.30
그저께, 형이 총에 맞았고 죽어 버렸다. 숀이 죽었다. 이 말이 너무 이상하고 너무 슬프다. 이야기의 화자는 열다섯 윌이다. 윌은 형인 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 지진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지만, 그래서 이게 지진과 얼마나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땅이 완전히 갈라져서 입을 벌리고 자신을 집어삼킨 기분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금방 꺼질 듯한 가로등처럼 숀의 시신에 매달려 있었고, 목격한 정보에 대해 묻는 경관의 질문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총성은 모든 사람의 귀와 눈을 멀게 했고, 누군가가 죽었을 때는 투명인간이 되는 게 최선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윌은 형의 망가진 서랍에서 총을 찾아낸다. 그리고 울다 잠든 엄마 몰래, 현관문을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에 탄다. 8층에서 1층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60초. 소년은 지금 살인자가 되려는 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당했으니까. 그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어 죽이고, 복수해야 하는 것이 룰이니까.
그런데 총을 쏴보긴 했어?
그 애가 물었다.
상관없어.
내가 말했다.
상관없다. p.143
대단히 이상한 작품이고, 또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소년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서사는 운문 형식으로 쓰여 있어 일반적인 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사실상 소년이 형의 복수를 결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전부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엘리베이터는 매 층마다 멈춰 서고,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벌어지는 소년의 심리 묘사가 긴장감 넘치게 이어져서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 간다.
이 작품은 뉴베리 아너 상과 에드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저자인 제이슨 레이놀즈는 책을 읽지 않는 10대들을 위해, 지루하지 않은 작품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영화의 씬처럼 그려져 있어 잘 읽히고, 단어와 문장의 배치, 폰트 기울기, 심지어 굵기까지 연출되어 있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너무도 영화 같은 이 소설의 번역 또한 영화 번역가가 작업을 했다. 영화 번역과 출판 번역은 번역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짧고 기발한 단편 영화 같아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 동안 만나왔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앉은 자리에서 전부 읽을 수 밖에 없는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곧 영화화 될 예정이라고 하니, 스크린에서 펼쳐질 이야기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