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시집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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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힘들게 힘들게 하루가 갔다/
지구를 두 팔로 안아 들어 올리듯/힘들게 힘들게 하루를 보냈다/
그건 아마 너도 그랬을 터/뱃멀미 거센 파도와 바람 무릅쓰고/
먼바다 흔들리는 먼바다 나가/얼마나 많은 고기를 잡아 왔을까/
그렇지만 아이야/잡은 고기가 비록 많지 않고/이룬 일 비록 많지 않아도/
하루를 마음 졸여 무사히/잘 보낸 것만 우선 고마워하자/


-p.90, '가난한 소망' 중에서

 

사실 표지 때문에 읽고 싶어진 책이다. 표지 이미지는 중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오아물 루의 작품인데, 최근에 국내에서도 전시를 가지기도 해서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주로 여행지에서 경험한 것들을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그의 작품 속 풍경들이 선사하는 그 느낌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관심있게 보고 있다.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도 많이 했고, 국내 책의 표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데, 특히나 이번 책의 감성은 계절과 너무 잘 어울려 더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겉표지를 벗겨내어서 접힌 부분을 펼치면, 예쁜 포스터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풀꽃 시인' 나태주의 등단 50주년 기념 신작 시집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라는 시, '풀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시를 잘 읽지 않는 이들도 웬만하면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그 시를 쓴 시인 나태주. 이번 신작은 시인의 50년 시력을 기념하는 시집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1971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해, 등단한 지 햇수로 꼬박 오십 년째라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를 써온 그 길고도 깊은 시간을 차마 헤아리지도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이 시집은 시인이 쌓아온  반세기의 내공을 함축해서 한 권에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녁 때/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p.170, '행복' 중에서

 

이번 시집은 1부 신작 시 100편, 2부 독자들이 사랑하는 애송 시(대표 시) 49편, 3부 나태주 시인이 사랑하는 시 6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나 신작 시들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난해하고 복잡하거나, 은유로 점철되어 이해하기 어렵거나 하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동안에도 워낙 간결하고 단순한 언어와 짧은 분량으로 시를 써왔기에,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시였지만 말이다. 인생이 무엇인가/한마디로 말하는 사람 없고/인생이 무엇인가/정말로 알고 인생을 사는 사람 없다, 사람들이 물이 없는 땅에서도/울창하게 자라는/나무처럼 산다/꿋꿋이 견디며 산다, 지금은 또다시 저녁/어둠이 우리의 피곤한 몸과 마음/감싸 안아 쉬게 한다/쉬어라 쉬어라 다 잊어준다, 그래, 그래, 애썼구나/잘 참아줘서 고마웠단다/이제 좀 쉬어라/쉬어야 다시 또 떠날 수 있지 등등... 담백하지만 위로가 되는 문구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삽니다/모진 마음을 달래며/삽니다/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숨기며 삽니다, 무엇보다 오늘 하루 살아 있음이 기적이고/내가 또 너를 다시 만나고/너를 사랑함이 더욱 기적 같은 일임을/알기 때문이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등 설레이는 마음을 가득 담고 있는 사랑에 관한 시들도 다정하게 읽혔다. '쓸쓸해져서야 보이는 풍경이 있고, 버림받은 마음일 때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럴 때 평소에 안 듣던 음악을 찾아 듣고, 시를 읽고, 영화를 본다. 사는 건 매번 만만치 않은 일이고, 사랑 역시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해서 쉬운 일은 절대 없다. 그러니 '힘들고 지치고 고달픈 날들'을 함께 겪어 나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인은 말한다. '인생은 고행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시인의 따뜻하고 사려 깊은 위로가 필요한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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