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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 패션 컨설턴트가 30년 동안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속살
장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평점 :
유학 시절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특이한 점은, 어린아이 가운데 심하게 칭얼대거나 우는 아이가 없다는 것, 그리고 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로 늘 어수선해 보이는 사회이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유유자적하게 삶을 영위해가는 그들만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자신을 들볶지 않는 합리적인 개인주의, 평화로운 공존. 어릴 때부터 받아온 충분한 사랑이 자양분이 되어 아기들도, 개들도 순하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p.61
패션 컨설턴트 장명숙이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탈리아의 다채로운 모습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밀라노로 유학을 떠난 저자는 지난 40여 년간 한국과 밀라노를 오가며 패션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유명 백화점의 패션 담당 바이어로, 무대의상 디자이너로서 살아오고 있다. 최근 유튜브 [밀라논나] 채널을 운영하며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과 코디, 패션 이야기로 다가올 젊은 세대를 만나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명예기사 작위'를 받았던 저자이니, 그야말로 그 누구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이탈리아의 속살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되었다.
저자가 유학을 떠났던 4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이탈리아 밀라노에 가려면 타이완과 방콕, 바그다드, 로마를 거쳐 꼬박 36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은 직항으로 12시간 정도만 가면 되는데 말이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우리에게 이탈리아는 자전거 도둑이 횡행하고 소매치기와 사기꾼이 득실거리는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니 또 놀라울 따름이다. 이탈리아 하면 갖가지 명품 브랜드가 바로 떠오르고, 스파게티와 피자 등 이탈리아의 음식 또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지금에서야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지금은 밀라노가 패션과 디자인의 도시로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차지 하고 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패션과 디자인, 성악과 요리 등을 배우러 이탈리아로 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런 이탈리아를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여기, 이탈리아통이 이야기하는 ‘진짜’ 이탈리아 이야기를 만나 보자.
"이탈리아 남자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잘생기고 멋있어요?"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탈리아 사회의 비애가 자리하고 있다. 워낙 성향이 그렇기에 잘 차려입는 것이 즐겁긴 하겠지만 이제는 항상 긴장을 하고 살아야 한다. 미혼남은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기혼남은 사랑이 식었다고 언제 폭탄선언을 할지 모를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또 이혼남은 언제 어디서나 새 파트너를 찾아야 하므로 늘 자신을 가꾸어야 한다. 결국 불안한 결혼의 현주소 때문에 남자들은 더욱 피곤해지고 남성복 산업은 호황을 누리는 것이다. p.117~118
밀라노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5일 근무에 백화점도 일요일에는 쉰다고 한다. 어느 직장이라도 여름휴가 한 달은 기본이요, 직장에 따라 성탄절, 부활절 휴가 등 1년에 거의 2개월의 유급 휴가를 준다. 어디든 노동조합이 확실한 역할을 해 하루 8시간 근무를 초과하는 법이 없고, 감기만 살짝 걸려도, 마음이 조금 우울해도 당당히 결근을 한다고 하니.. 우리로선 부럽기 짝이 없는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사는 방식이 구석구석 다른 북부와 남부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이탈리아 남자들의 못 말리는 바람기, 이탈리아 할머니에게 배우는 멋있게 나이 드는 법, 프랑스 제품의 하청 국가에서 밀라노를 세계 제일의 패션 도시로 키운 배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 있던 것 이상의 정보들을 만날 수 있어, 언젠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 되면 더 재미있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탈리아의 패션과 관련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 전반적인 것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어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책이라는 느낌이다. 남북으로 긴 반도국가라는 지리적 위치와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품성 때문에 이탈리아는 흔히 우리나라와 닮은꼴로 회자되는 나라이지만, 사실 문화나 생활양식 등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진짜 이탈리아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길 추천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깊숙이 숨어 있는 은밀한 이탈리아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