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간호사 - 가벼운 마음도, 대단한 사명감도 아니지만
간호사 요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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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던 길, 같이 퇴근하던 동료가 말했다. “우리가 이 직업에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즐기면서 부담 없이 일하면 되지 않을까? 보람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하지만 병원은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보다 더 큰 걸 요구하고, 숨이 꼴딱 넘어가기 직전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부담 없이 일할 수는 없다. 그러니 보람, 그거라도 있어야 버틸 것 같은데....     p.43

 

현직 간호사가 그들의 리얼한 현실을 그려내 화제가 되었던 웹툰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콜 벨을 눌러 분노케 만드는 할아버지 환자부터 잘해도 못해도 타박하는 선임 간호사, 초과 근무가 잦은 근무 환경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는 간호사의 시선이 실감나게 담겨 있다.

 

 

워라밸은 꿈꿀 수 없는 3교대와 잦은 초과 근무, 군대 못지않은 위계질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태움’까지… 간호사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여지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간호사들이 매일 업무 시작 전에 챙겨야 할 것들은 사원증과 네임펜, 가위, 볼펜, 면테이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멘탈'이다. 제대로 밥 먹을 틈도 없이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겨우 시간이 나서 구내식당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밥을 꾸역꾸역 삼킨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이 든다니.. 괜시리 자괴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 가고, 병원에서의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렇게 저자는 이제 대형 병원 5년 차 간호사가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병원은 조금 더 다닐만해 졌고, 이제는 적응이 됐는지 처음의 힘들었던 감정이 가물가물해졌다.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지 않을까. 버티다 보니 어느새 신입이 아니라 선배가 되었는데, 여전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내가 이러고 있나'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입사 초, 말로만 듣던 ‘태움’이 내게도 찾아왔다. ‘여쭤보고 해야 하나?’ 싶어서 물어보면 ‘아직 그것도 몰라?” 그래서 알아서 하면 “모르면 쫌 물어봐야지!” 기승전 혼남! 이러나저러나 혼나기는 마찬가지...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척척 잘 해내는 사람은 없기에 입사 초기의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가 있을 거다. 그렇지만 누구나 그렇다는 말로 한 사람이 느끼는 어려움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선배들이여! 제발, 말은 예쁘게 씁시다!    p.60

 

한때 뉴스에 숱하게 보도되어 일반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간호사들의 '태움'에 대해서도 수록되어 있다. 저자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태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비롯해서 그에 대한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도 수록되어 있다. 현재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라던가, 신입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이들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초과 근무가 잦은 근무 환경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는 간호사의 시선 또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현실감 있는 충고가 되어 줄 것이다.  

 

 

주로 현직 간호사들이 울고 웃을만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서 간호사 커뮤니티에서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을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어쩌다 간호사가 되었지만 어쨌든 간호사다'라는 문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거창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매일 성실하게 해내는 세상의 수많은 직장인들에게도 와 닿을 수밖에 없는 문구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직업들이 그렇지 않을까. 장래 희망이나 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성적에 맞춰서, 등급에 맞춰서,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어쩌다 보니 선택하게 된 길이 직업이 되어 버린 경우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든 싫든, 보람을 느끼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대단한 사명감은 아니더라도 하루하루 보람을 찾으며 오늘도 버텨내는 간호사들을 비롯한 세상의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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