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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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면 왜 안 되는데?"
왕자는 질문을 해봤다. 비웃거나 농담할 의도는 없었다. 실제로 그 답을 알고 싶었다.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들려주는 어른을 만나보고 싶었다. 기무라한테서는 대수로운 발언을 들을 수 없을 거라는 짐작도 갔다. 아마도 '사람은 죽여도 되지 않나'라는 자포자기식 의견이 날아오겠지. 그리고 "나랑 내 가족이 죽는 건 참을 수 없지만, 타인이 죽는 건 아무 상관없어"라고 말할 게 틀림없다.    p.58~59

 

왕년에는 킬러였지만 현재는 한낱 알콜 중독자에 불과한 ‘기무라’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도쿄에서 모리오카로 향하는 신칸센 하야테에 오른다. 여섯 살 어린아이를 백화점 옥상에서 떠밀어 중태에 빠뜨린 소년 ‘왕자’를 찾아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눈앞에서 커다란 불꽃이 튀었고, 눈을 떴을 때는 창가 자리에 묶인 채로 앉혀 있었다. 중학생이지만 너무도 영악한 왕자가 오히려 기무라의 행동을 예측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거였다. 한편 콤비 킬러인 '밀감'과 '레몬'은 인질로 잡혔던 보스의 아들을 무사히 구하고 몸값이 든 검은 트렁크를 들고 하야테에 탑승한다. 레몬은 돈이 든 트렁크를 좌석과 반대편인 앞쪽 차량 짐 보관소 선반에 올려두었는데, 트렁크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그들이 사라진 트렁크를 찾아 우왕좌왕하는 사이, 보스의 아들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같은 시간, '나나오'는 마리아의 지시로 검은 트렁크를 찾아내 도쿄 다음 역인 우에노에서 내릴 예정이었다. 무사히 트렁크를 손에 넣어 플랫폼으로 내려서려고 하는데, 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청부업자 늑대라는 걸 알아본다. 얼마 전에 늑대가 초등학생들을 괴롭히는 상황에서 그에게 본때를 보여줬던 터라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꼴이 된 것이다. 늑대는 나나오를 강제로 가로막고 차 안으로 올라탔고,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주먹다짐을 하다 그만 늑대를 죽이고 만다. 자, 그렇게 종착역까지 남은 시간은 단 2시간 30분! 사이코패스 왕자의 잔꾀에 이들은 우연과 필연으로 얽히면서 모두들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과연 밀폐된 기차 안에서 이들 중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잘 들어.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살해되고 싶지 않은 녀석들이 만든 규칙일 뿐이야.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보호받고 싶은 녀석들이 만든 거지. 나한테 묻는다면, 살해되고 싶지 않으면 살해되지 않게 처신하면 된다. 남에게 원한을 사지 않는다거나 신체를 단련한다거나. 방법은 여러 가지야. 너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테고."     p.460~461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그래스호퍼>, <마리아비틀>, <악스>로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 무려 7년 만에 출간되어 작년에 서점대상 최종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냉혹한 살인청부업자들과 아내의 복수를 꿈꾸는 어수룩한 전직 수학 교사 스즈키의 쫓고 쫓기는 하드보일드 느와르를 그렸던 <그래스호퍼>에 이어 만나게 되는 두 번째 작품은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인물이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는 킬러가 등장하는 여타의 추리, 스릴러 장르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이사카 고타로만이 그려낼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단어 그대로 너무도 '인간적인' 킬러가 등장하는 작품은 만나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사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을 '인간적'이라고 설명하는 것부터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냉혹한 킬러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긴 하지만, 잔인하거나 폭력적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저 킬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회와 인간이 안고 있는 어둠과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읽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위트와 유머에서 비롯되는 재미도 여전하고, 전문 킬러가 등장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의 매력도 훌륭하다. 행운과 불행, 우연과 필연, 선과 악이 교차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흥미로운 구성을 만들어 내고, 질주하는 기차 안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의 긴장감이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죠?” 그에 대한 이사카 고타로의 답이 잔혹한 생존 게임으로 펼쳐진다.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려가며 인간의 폭력과 악의 근원을 탐구하는 ‘이사카 월드’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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