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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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녀들에게 분명히 선언한 메시지가 두 가지 있었다. 시간을 잘 지켜라. 그리고 변명을 하지 마라. 그런데 지금 그는 늦어서 무슨 알리바이를 댈지 수십 가지 변명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자기 생일 전날 엄마를 묻으러 가게 되다니. 그의 마지막 생일이 될 터였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는 명령을 선포하여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가족을 불러들였다. 이 생일은 아무도 잊지 못할 완벽한 파티가 되리라.     p.43

 

죽음이란 참으로 우습고도 현실적인 농담이다. 물론 이는 해질녘을 향해 점점 빨라지는 카운트다운을 체감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노인들이라면 어린 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하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막상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는 생각한다.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일흔을 목전에 둔 빅 엔젤 역시 이제껏 크리스마스 아침을 예순아홉 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전혀 충분하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암 선고를 받은 그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잊지 못할 자신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준비하며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온 가족들을 불러 모은다. 그런데 생일 일주일 전, 100세가 된 빅 엔젤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만다.

 

결국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일주일 미뤄서 자신의 생일 파티와 함께 진행하기로 한다. 여기 저기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생일 파티를 위해 먼 길을 두 번이나 올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70세 아들의 생일 파티와 100세 어머니의 장례식을 같은 날 한다니 이 무슨 어이없는 발상이냐 싶겠지만, 이상하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시끌벅적 유쾌한 이런 가족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멕시코인이고, 멕시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살지만,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4대를 아우르는 대가족의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 수가 없다. 이들 가족들의 말투는 퉁명스럽고 독설이 난무하지만 그 속에서 웃음과 유머가 묻어나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일흔을 목전에 둔 사람이라면, 본인이야 모든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사실상 아무것도 중요하지가 않다. 그걸 어떻게 해야겠다는 필요성도 간절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생일날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껏해야 20년 정도 더 살겠군.' 그리고 한 해 한 해가 점점 어둡게 저물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15년 남았군.' '10년 남았나.' '이제 5년 정도겠군.' 그러다가 아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사는 게 뭐 대수라고. 내일이라도 버스에 치여 죽을 수 있어! 언제 골로 갈지는 아무도 몰라."    p.150

 

이 작품은 시작부터 장례식으로 시작하고, 곧 죽을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극중 빅 엔젤이 하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허풍을 떨고' 유쾌한 기조를 잃지 않는다. 재혼한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나 소외감을 느끼고, 두 번 이혼하고 세 번째 결혼을 하기도 하고, 데드메탈에 빠져 소리만 질러대기도 하고, 미군에게 속아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리고,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기도 하고, 결혼생활의 힘겨움을 토로하고.. 세상 모든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들을 전부 다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이들 가족에게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빅 엔젤과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어머니를 기리면서 소중한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오백여 페이지의 두툼한 분량 동안 실제 흘러가는 시간은 단 며칠이지만, 이들 대가족의 수십 년 동안의 세월이 모두 담겨 있어 묵직한 시간의 무게를 안겨주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이 작품을 실제 형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서 영감을 받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재치 있는 문체로 그려내어 “현대의 마크 트웨인이다”라는 평가를 받았고, 필립 로스와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영화화한 스콧 스테인도프의 지휘 아래 할리우드 TV 시리즈로 영상화될 예정이기도 하다. 웃다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한 편의 가족 시트콤 같은 작품이라 TV 시리즈로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 이야기였다. 가족,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그래서 더 상처를 주고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는 관계. 가족이란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라 그만큼 더 소중히 배려해야 하는 존재이다. 이 작품을 통해 모두 자신의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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