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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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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리, 우리의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어. 생활과 희망, 욕구, 절망, 열정, 우리의 장점과 단점 모든 것이. 이야기는 오늘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갈망과 내일의 가능성을 보고 싶은 열망을 담고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문학을 '인간이 되는 기술 안내서'라고 부르기도 하지. 그러니까 당연히 문학의 역할이 크다고 봐야겠지."
"문학을 공부하면 아들의 병을 낫게 하는 법을 알 수 있을까요?     p.163~164

 

캄보디아 스퉁 민체이, 상 리와 기 림 부부에게 꿈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매일 같이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에서 쓰레기를 주워 내다 팔며 하루 벌어 겨우 하루 먹고 사는 생활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는 16개월이 된 아들 니사이가 있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열과 설사에 자주 시달리곤 했다. 스퉁 민체이는 높이가 수십 미터나 되는, 악취가 코를 찌르는 쓰레기 산들이 복잡하게 엉킨 거미줄처럼 골짜기를 이루고 있어 주민들조차 길을 찾는 게 쉽지 않은 곳이었다. 프놈펜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곳 사람들은 남들이 내다 버린 것들에서 삶을 일구고자 매일같이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쓰레기를 줍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픈 일이었다.

 

게다가 이들 부부를 괴롭히는 것이 또 있었으니, 집집마다 집세를 걷으러 다니고, 집세가 밀리면 당장 쫓아내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 인정머리 없는 집세수금원(Rent Collector) 소피프 신이라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암소’라고 부르며 치를 떨지만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표독스럽게 집세를 받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 림이 강도를 만나는 바람에 돈을 다 빼앗겨 집세를 내지 못하게 되었고, 소피프 신은 당장 아침까지 집을 비우라고 협박을 하던 중이었다. 소피프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 아이를 힐끗 보다가 바닥에 펼쳐진 책을 발견하게 된다. 한 순간 맹렬하던 분노가 느닷없이 잠잠해지더니 정적이 감돌고 소피프는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책이긴 했지만 사실 너무 낡고 오래된 물건이었다. 상 리는 도무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당신을 아주 자랑스러워했을 거예요." 내가 떠날 준비를 하자 치유자가 말했다.
"아마도 그는 미리 전해 들은 얘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매립장 근처에 살아요."
그는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에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죠."     p.346

 

이 작품은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의 쓰레기 매립장, 스퉁 민체이에서 살아가는 실제 인물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작가인 캠론 라이트는 그의 아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승리의 강>에서 영감을 받아,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선물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라는 문학적 상상을 하게 된다. 쓰레기를 주워서 내다 팔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아픈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의 삶에 문학이 들어온다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언젠가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살던 상 리는 소피스 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에게 부탁한다. 자신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냐고. 이유는 단순했다. 아들에게 글을 가르칠 수 있다면, 니사이한테 지금보다 나아질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여자의 문학 수업이 시작된다.

 

아무렇지 않게 욕설을 내뱉고, 늘 싸구려 술에 취해 모든 것에 냉소하던 소피프와 성실하고 순진한 시골 여자 상 리, 극단적으로 다른 두 여자가 가르치고, 배워나가는 문학 수업의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이다. '문학을 이해하려면 머리로 읽고 가슴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해' '우리의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문학을 '인간이 되는 기술 안내서'라고 부르기도 하지' '교육은 언제나 옳아. 특히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게 해줄 때는 더욱 그렇지'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충분히 공감을 얻을 만하다고 여길 때 영웅은 가장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나올 수도 있어' 등등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공감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인생, 절망뿐인 삶 속에서 문학이 어떻게 누군가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서사 자체도 뭉클하지만, 가난한 이들이 그저 하루를 버티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그린 드라마만으로도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캄보디아 최대 쓰레기 매립장에서 벌어진 실화 위해 세워진 허구의 이야기는 문학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력을 매우 견고하고,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감동적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아무리 절망적이고 내일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인생이라도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간절히 믿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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