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스토리콜렉터 79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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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묘하게 으스스했다. 휑뎅그렁해서 어쩐지 오싹했다. 사실 방 두 칸짜리 낡은 연립주택에 살던 아이가 갑자기 호화 저택에 살게 되었으니 이질감을 느낄 만도 하다. 우리 가족 외에 또 누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오싹하고 불쾌한 감각이라니...... 아침부터 밤까지 새아빠는 회사에 나가 있었다. 집에 있는 사람은 엄마와 출퇴근하는 가사도우미뿐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누가 있다는 기분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p.26

 

열한 살 유마는 새아빠가 생기면서 난생처음 이사를 했고 학교를 옮기게 된다. 유마는 초등학교 6학년으로 올라가기 직전의 봄방학을 즐기던 참이었는데, 엄마의 재혼으로 인해 태어나고 자랐던 간사이 지방을 벗어나 생전 가본 적 없는 도쿄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유마의 친아버지는 순문학 작가였는데, 필명으로 관능소설을 써서 겨우 생계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다 취재 여행을 다녀와서는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맥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꾀죄죄한 방 두 칸짜리 연립주택에서 고급 주택가로 이사와 대저택에서 살게 되었지만, 유마는 이런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다. 그나마 새아빠의 유일한 혈육인 도모노리 삼촌과 유마가 말이 잘 통해 유마에게 든든한 수호천사가 되어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새아빠가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게 되고, 엄마가 임신을 하게 되어 두 사람만 함께 외국으로 가고, 중학교 입시를 생각해 유마만 일본에 남게 된다. 유마는 삼촌과 그의 동거녀와 함께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고급 별장지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게 된다. 하지만 숲 속 별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왠지 모를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위층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뭔지 모를 존재가 집 안을 배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실 별장 뒤편에 있는 '사사 숲'이라고 불리는 곳은 어린아이가 갑자기 행방불명되는 일이 잦았던 금단의 숲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아이는 발견되지 않거나, 발견되더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주친 60대 노인은 유마에게 최대한 빨리 이 집을 떠나는 게 좋다고, 조심하라는 경고의 말을 남기는데.. 과연 유마는 이곳에서 무사히 방학을 보낼 수 있을까. 별장 뒤로 펼쳐진 사사 숲에 숨겨져 있는 비밀과 진실은 무엇일까.

 

 

조금 전까지 닫혀 있던 눈앞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 동익동의 복도가 나타났지만, 물론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공포가 되살아났다. 복도의 조명 스위치가 이 부근에 있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식당의 불을 켤 수밖에 없지만, 이 역시 망설여졌다. 유마는 용기를 짜내서 두 눈을 질끈 감고 과감하게 복도를 비스듬히 가로질렀다. 그리고 조리실 문손잡이를 더듬어서 필사적으로 찾았다. 없어? 공황상태에 빠져서 비명을 지르기 일보 직전에야 왼손이 문손잡이에 닿았다.     p.154

 

미쓰다 신조의 신작 <마가>는 <흉가>, <화가>에 이은 '집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이 시리즈는 나이 어린 주인공이 낯선 곳으로 이사하면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각 권 사이에 내용상의 연관성은 없지만, 편안한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끔찍한 괴이 현상의 무대가 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시리즈가 되고 있다. 특히나 어린 주인공의 시점으로 체험하는 괴이한 현상들과 끔찍한 경험들을 통해 전달되는 공포라 그런지, 감정이입하기가 매우 쉬운 편이다. 스멀스멀 나타나는 '그것'이 뒤를 돌아보면 우리 집 어딘가에서도 나타날 것처럼 말이다.

 

 

미쓰다 신조가 그려내는 공포란 헐리우드 영화의 그것처럼 아무 의미 없이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구제할 수 없는 절망, 불합리할 정도의 우월감, 끝을 모를 악의, 압도적인 광기, 소름 돋는 증오, 너무나도 제멋대로인 살의'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동기가 있어 출발한 공포라 더욱 섬뜩하다. 오싹하고 기분 나쁜 기운 자체는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사실 그 악의 기원을 따지고 보면 극도로 현실적인 배경에서 시작한 거라 그만큼 끔찍하고, 놀라운 것이다.

 

시리즈의 세 번째 <마가>는 기존 '재앙이 내린 집'이란 기본 컨셉에, 기존 두 작품과는 다른 파격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더욱 궁금했던 작품이다. 미쓰다 신조 특유의 상황 묘사들이 극한의 공포와 오싹함을 불러오는데, 특히나 의성어들이 더욱 실감나는 현실감을 전해 준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뒤쪽의 새까만 형체의 기척이 단숨에 다가오며 내는 소리, 슉, 슈우욱. 넓고 넓은 공간에 덜렁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 갑자기 들리는 소리, 드르륵, 드르륵. 또각, 또각, 또각. 그러다 갑자기 빨라지는 발소리, 딱, 딱, 딱. 층을 단숨에 내려오며 뚜벅, 뚜벅, 뚜벅. 한밤중에 갑자기 조리실 안에서 들리는 흐릿한 소리, 푸훅. 어둠 속 인간의 형체가 걷기 시작하며 척, 척, 척. 갑자기 문이 삐걱거리며. 끼이. 누구라도 이런 장면묘사들을 읽으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식은 땀이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증폭되는 공포감이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하고, 서사 속으로 단숨에 들어가도록 해서, 더욱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거기다 마지막 결말에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반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역시나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세계를 만나고 싶다면, 매혹적인 마성의 세계 '미쓰다 월드'에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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