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루션 맨 -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
로이 루이스 지음, 호조 그림, 이승준 옮김 / 코쿤아우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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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진화하는 게 뭐가 그렇게 문제인데? 형 얘기나 좀 들어보자."
"진화는 무슨 진화."
바냐 삼촌이 도저히 씹히지 않는 힘줄을 불에 던지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일 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냐? 지구상 그 어떤 동물도 산꼭대기에서 불을 훔치려고 한 적은 없었어. 너는 자연법칙을 위반한 거야. 오스왈드야, 그 사슴고기 좀 이리 줄래?'"
"위반이 아니라 진화라니까."     p.71

 

원시인들이 등장해서 인류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하면, 대부분 역사나 과학 혹은 인문학 장르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장르는 무려 '소설'이다. 수백만 년 동안 천천히 진행된 초기 인류의 진화과정을 한 원시인 가족의 삶으로 압축시켜 보여준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진화를 다루고 있는 과학서들을 그래도 꽤 읽어본 편인데, 소설 형식으로 쓰여진 건 읽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카오프렌즈의 아빠 호조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더욱 '힙'해진 원시인들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표지 일러스트와 '지난 50만 년 동안 나온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는 띠지의 문구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읽기도 전부터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과학자이자 언제나 진화하고 싶어 여러 연구를 하고 있는 아버지 에드워드가 있다. 그는 화산에 올라가서 가져오던 불을 직접 피우는 방법을 알아내기도 하고, 가족들끼리 짝을 맺는 문화에서 벗어나 다른 부족과 혼인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제안을 하고, 인류 최초의 활을 개발하고, 음식을 씹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문제를 고민하고, 현재 그들이 쓰고 있는 언어는 반쪽짜리 의사소통 방식에 불과하다며 사고력을 높일 수 있도록 언어가 풍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당시 원시인들로서는 파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개척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형인 바냐 삼촌과 항상 대립하고, 자식들 또한 그의 행동을 매번 불만스러워한다. 바냐 삼촌은 에드워드에게 왜 자연의 순리대로 따르지 않고 인위적으로 빨리 진화하려고 하느냐며 소리치지만, 그럼에도 그의 진화에 대한 열망은 끊임없이 타오른다.

 

 

"우리 중 누가 인류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인류를 진정한 인간의 길로 인도하는 뛰어난 선구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점을 꼭 명심하거라. 나는 너희 둘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단다. 내가 살아서 그 성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는 아마 가능할 거야. 바로 진정한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는 거지! 나야 보다시피 늙어가는 몸이지만, 나의 자그마한 노력이 너희들을 그런 길로 인도했다는 것만 알아준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구나."     p.240

 

이 작품은 1960년에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제목이 여러 번 바뀌며 6번 개정 출판될 정도로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벌써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한데, 나 역시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국내에는 2005년에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원작의 코믹함과 풍자,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는 그대로 살리되, 완전히 현대적인 번역과 시선으로 돌아온 개정판은 당시에는 자연스러웠으나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조금 날카로울 수 있는 부분들을 다듬고, 현재 트렌드에 맞는 단어들을 세심하게 배치해 시대적 거리감을 확 좁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익히 예상할 법한 어느 정도 뻔한 스토리라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유쾌하고, 놀라운 이야기로 만날 수 있었다. 1만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현대의 이야기처럼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설의 화자가 에드워드가 아니라, 그의 둘째 아들 어니스트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작은 일도 남들보다 훨씬 깊이 있게 생각하는 등 철학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어니스트 역시 다른 형제들과 삼촌처럼 아버지의 진화를 향한 행동에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불 사용법을 다른 부족에게 알려주려고 하고, 어니스트는 불 피우는 방법을 자신과 가족들이 독점해야 한다며 반기를 드는데... 가족들과 에드워드 사이의 불화는 심각해져 가고 그렇게 쌓인 갈등이 폭발하게 되는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은 과거로 퇴행할 수도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제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극중 에드워드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인류 진화의 과정을 만나보고 싶다면, 시대를 초월한 인류 진화의 연대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야기 자체로도 너무 재미있고, 신선하고, 색다르고, 현명한 소설이라 진화를 다루고 있는 그 어떤 이론, 과학서보다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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