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나쁘든 하이무라 야마토를 무시할 수 없다. 잊을 수도 없다. 그렇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간접적으로 서로 찾는 것이다.
- 왜?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째서 그 사람은 그렇게 되어버렸을까? 대체 그 사람의 어떤 얼굴이,
어떤 말이, 어떤 태도가 그 사람의 진실이었을까? p.169
삼류 사립대생 마사야는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사야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만해도 우등생에
반의 영웅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이후로 성적이 떨어지고 절망에 빠져 여러 번 휴학 후 결국 퇴학 처분을 받고 심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후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수험 자격을 얻었지만, 가고 싶었던 곳에는 전부 떨어지고 간신히 합격한 곳이 신흥
사립대학뿐이었던 거다. 희망하지 않았던 대학 생활이었고, 친구들은 모두 수준 낮은 인간들로 보였으니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사야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것은 24명을 죽인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였다. 이미 사형을 선고 받은
연쇄살인범이 평범한 대학생에게 왜 편지를 보낸 것일까.
하이무라 야마토, 그가 24건의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것은 5년 전 일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입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중 고작
9건뿐이었다. 피해자는 대부분 10대 소년소녀로, 적게는 열여섯 살부터 많게는 스물세 살이었다. 만약 그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면, 누구나
영화배우 같은 느낌의 기품 있는 미남자라고 생각할 법한 차분하고 온화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는 마사야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
입학을 눈앞에 두었던 시기까지 단골이었던 제과점의 주인이기도 했다. 하이무라는 소년소녀들을 감금하고 고문하고 살해한 그 두 손으로 데니쉬와
바게트, 스콘을 구워서 깔끔한 미소로 손님에게 건네주곤 했었다. 마사토는 편지를 받고 그를 면회하러 간다. 하이무라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모두
인정하지만, 아홉 번째 살인만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여자는 자신의 타깃과는 다르고, 수법도 다르다며, 그 한 건만큼은
누명을 쓰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마사야에게 자신의 누명을 증명해달라고 말한다.
"너, 최근에 누군가에게 '사람이 변했다'라는 말 들은 적 없어?"
가나야마가 속삭이듯 물었다.
"모두 그래. 조금씩 그 사람과
닮아가. 영향을 받는 거야. 말버릇도, 몸짓도, 눈매까지도. 나도 그랬어. 그 무렵의 나는 정말로 '그 사람이 됟고 싶다'라고
바랐지."
마사야는 숨을 삼키고 가나야마의 말을 들었다. 들어서는 안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검은 파도가 술렁였다.
p.317
마사야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유난히 친절히 대해주었던 빵집 주인이자, 현재의 자신이 아니라 우등생이었던 모습만을 알고 있는
하이무라의 요청을 수락하기로 한다.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하이무라가 일으킨 사건에 대한 백여 장의 자료를 읽고, 살인과 범죄에 대한 책을 구입해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이무라의 주변 인물과 사건 관계인들을 하나하나 만나며 조사를 이어간다. 하이무라가 초등학교 재학 당시의 교사,
미취학 아동일 무렵에 자주 맡아서 돌봐주었던 친모의 사촌 언니, 청소년기 하이무라의 보호 관찰을 맡았던 노인, 그와 초등학교, 중학교 9년을
함께 보냈다는 동창, 그의 마지막 양아버지였던 남자, 동네 주민들과 빵집의 단골들, 그와 데이트를 했던 여성들까지... 만나면서 마사야는
생각한다. 각자가 가진 하이무라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다르다고.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내젓는 사람들이 있었고,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감싸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매우 똑똑한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생아로 태어나 열악한 성장 환경에서 자라야 했고,
책임감도 능력도 없는 어머니 밑에서 주위의 멸시와 괴롭힘에 시달리고, 양아버지에 의한 신체적, 성적 학대까지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생이 불행하다고 해서 모두가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범죄를 저질러도 괜찮다는 핑계는 될 수 없다.
연쇄살인범의 인생에 숨은 사건과 진실을 낱낱이 알아가면서, 마사야는 점점 하이무라의 내면으로 깊숙이 빠져든다. 그렇게 그에게 서서히
매료되어 어느 순간 문득 자신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끼게 되는데, 살인은 정말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것일까? 이 작품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의 성장 과정에서부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동기와 심리 상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심리 조작의 기술까지,
시종일관 연쇄살인범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 존재했던 다양한 연쇄살인범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기도 하고, 하이무라가
체포되었을 당시의 심정이나 수감 중인 상태의 마음 등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어 오싹하면서도 충격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연쇄살인범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그들이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과정을 통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