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후지사키 사오리 지음, 이소담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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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마음을 나는 '슬픔'이라고 불렀다. 누군가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지만 그 누구에게도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비참함을 '슬픔'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여겨지고 싶어서 나는 울었다. 그래서 그때, 눈물을 흘릴 만큼 간절하게 바라던 말을 해준 쓰키시마를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p.22

열네 살 소녀 나쓰코는 친구를 어떻게 사귀면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시작했던 피아노가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무렵부터 여자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곤 했는데, 부모님은 맞벌이라 늘 집에 안 계셨고 항상 혼자였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 한 학년 선배인 쓰키시마와 가까워지게 되어 함께 산책을 하고, 서점이나 음반 가게에 가고, 영화를 보며 대화가 잘 통하는 속 깊은 이성 친구가 된다. 시간이 흘러 쓰키시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사라진 학교에서 나쓰코는 중학교 3학년이 된다. 몇 개월 만에 연락이 된 고등학생 쓰키시마는 조금 어른스러워 보인다. 그는 고등학교가 재미없고, 노력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지루해하다 결국 학교랑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그만두고 미국에 가게 된다.

서로 너무도 상극처럼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닮아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이다. 나쓰코와 쓰키시마는 그렇게 서로 다른 듯 닮은 모습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나누며 성장한다. 나쓰코에게 쓰키시마가 약간 첫사랑 같은 느낌이라면, 쓰키시마에게 나쓰코란 어떤 존재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는 나쓰코에게 난 너를  쌍둥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지만, 거리낌없이 좋아하는 애가 생겼다고 고백을 하는 등 그녀를 이성으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녀 역시 우리 관계를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하며 우정인 듯 사랑인 듯 알 수 없는 독특한 관계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나쓰코와 쓰키시마는 왕따와 우울증, 유학 실패로 인한 정신병원 입원 등의 방황하는 시기를 거쳐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함께 음악을 하는 것이 마침내 자신들이 있을 곳이라는 것을 찾게 된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쌍둥이 같으면 좋을 텐데. 경계선이 사라져서 뭐든지 다 공유하면 좋을 텐데. 그러면 지금 네가 보는 세계를 나도 볼 수 있을 텐데.

나는 지하실에서 다른 세계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 목소리를 더 멀리까지 울려 퍼뜨리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p.291

이 작품은 밴드의 멤버가 쓴 데뷔 소설로 제158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던 화제작이다. 돌연 음악계에 등장해 압도적인 팝 센스와 친근한 존재감으로세카오와 현상을 일으키며 인지도를 얻은 4인조 밴드 SEKAI NO OWARI. 이 독보적인 인기 밴드에서 피아노 연주와 라이브 연출 전반을 담당하고 섬세한 감성의 곡을 만드는 멤버 Saori의 데뷔작이다. 평소에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고, 그걸 바탕으로 독서에 관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소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밴드의 결성 과정을 그려 음악 팬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쌍둥이, 마치 이 세상에 같은 타이밍에 태어나 같이 살아온 존재 같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완벽하게 다른 성향을 지니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존재가 만나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한 몸을 나누고 태어난 것 같다는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공감이 되기도 하고, 낯선 느낌이면서도 익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내 인생의 파괴자인 동시에 창조자였다"는 말이 뭉클하게 와 닿았다. 쓰키시마는 나쓰코가 그의 쌍둥이가 되고 싶어서 괴로워했던 시간도, 그리고 쌍둥이가 되고 싶지 않아 혼자 울던 밤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 화창한 날도, 비 오는 날도, 건강한 날도, 아픈 날도, 넉넉할 때도, 빈곤할 때도 말이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의 의미와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하고 슬퍼하기도 했던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뭉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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