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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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만든 하이힐은 정말로 아름답다. 그건 인정한다. 샌들도 놓여 있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게 있지만, 마찬가지로 놓여 있는 것만으로 자태가 아름다운 하이힐이 있다. 나는 크리스찬 루부탱의 하이힐을 실물로 보고, 세련된 사람들이 루부탱이라면 설레는 이유를 절실히 이해했다. 하나같이 작품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구두였다. 다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과 자기가 신고 싶다, 신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절대로 내게는 어울리지 않을 구두였다. 내게는 내 체형에 어울리는 구두가 있다.   p.99~100

<카모메 식당>,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결국 왔구나> 등의 작품으로 만나왔던 무레 요코가 쓴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에 관한 에세이이다. 이제 60대를 맞은 무레 요코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이 강요되었던 일본 사회에 나타난 돌연변이 같은 존재라고 한다.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 중에서 자신에게 불편한 것들을 '정중하게, 그렇지만 단호히' 거부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하기를 거부하는 목록들이 뭐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는 그런 것들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하면 또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대체 그 당연함은 누가 만든 것일까. 모두 세상이 만든 '당연함'인데 다들 너무 신경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사회적 관습이나 규칙들에 반발하고 싶지 않아서, 내지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나다운 모습을 잃어 버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레 요코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자주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나빴다고 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우선이었던 데다, 심리적,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을 때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괜찮은 남자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육아를 하면서 일을 하기는 힘들었고,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당연히 여성이 결혼을 하면 일은 그만두는 게 다반사였다. 그녀가 바라는 건 혼자서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일이었지, 남편이나 자식이 있는 가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세상의 기준에 너무도 당당하게 ''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인생이 멋지게 보이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한다, 하지 않는다'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옛날부터 들어온 여자의 행복, 즉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늙으면 자식과 손자들이 부양해 주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루트를 완전히 무시했다. 전부 하지 않고 살고 있다. 결혼은 번식의 근본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도 있다....예스보다 ''라고 말하기가 어렵지만,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 삶의 방식이 있는 게 당연하다. 자신감을 갖고 세상의 기준에 ''라고 할 수 있는 인생도 좋다고 생각한다.    p.155~156

누구나 다 이용하는 인터넷 쇼핑은 편리하지만, 오배송이 되는 경우도 있고 택배 상자 처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몇 번 그런 일들을 겪고 나서 이제는 옷도 책도 인터넷으로 사지 않고 보니, 너무 편해졌다고. 좋다는 화장품도 이것 저것 써보았지만, 정작 피부에 맞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오히려 트러블이 생기는 경험을 하고 나서 지금은 최소한의 제품만 사용한다고. 그렇게 그녀는 예뻐지는 것보다는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고, 커피를 너무 좋아했지만 몸에 무리가 오자 이제는 카페인리스 제품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하이힐, 스마트폰, SNS, 포인트 카드 등등... 사람들이 다 하니까, 누구나 필요하다고 하니까 나까지 굳이 할 필요는 없다는 그녀의 목록들이다. 나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것과 안 맞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본다. 눈치 볼 것 없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두 달 정도 남은 올해에는 무엇을 하지 않을지, 그리고 다가올 2020년에는 또 무엇을 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지 말이다. 예전부터 쉬는 날 집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어쩐지 낭비처럼 느껴지곤 했었다. 항상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서 바쁘게 사는데 너무 익숙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별일 없이 그냥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는 걸 나는 참 못한다.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 가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가끔은 몸도, 마음도 좀 쉴 수 있는 여유를 스스로에게 안겨 주고 싶다. 무레 요코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읽다 보니, 나도 조금은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귀찮은 일은 그냥 미뤄보기도 하고, 가끔은 아무 것도 안 하는 채로 시간을 흘려 보내기도 하고, 뭐 어때. 그게 나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내일을 고대하면서 말이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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