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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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세기말 불꽃처럼 등장한 이들의 주요 무대는 어디였을까? 바로 살롱과 카페다. 빈이라는 도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커피라는 단어와 무척 밀접하게 느껴진다. 빈의 카페를 누비고 다녔던 수필가 알프레트 폴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카페란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 동시에 옆자리에 벗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이처럼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살롱과 카페는 자유롭게 작품을 구상하고, 자신의 이념과 가치를 설파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p.53~54

사진작가인 아내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문갑식 기자,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매번 여행하는 곳과 관련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찾아본다고 한다. , 소설, 그림, 조각, 음악 등 우리가 걸작이나 명작이라 부르는 작품을 한껏 감상하고 여행지로 떠나면, 단지 눈에 보이는 그 공간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 여행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카페 센트럴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프로이트, 폴가, 츠바이크, 로스가 한자리에 모여 열을 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유럽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위해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는 위대한 예술가 15인의 삶과 예술을 펼쳐놓으며, 그들이 살았던 생생한 삶의 현장까지 소개하고 있다. 클림트, 모차르트, 랭보, 단테…, 그리고 카사노바까지 흥미진진한뒷이야기로 만나는 예술가들의 맨얼굴을 만나 보자. 평범해 보이던 장소도 예술이라는안경을 쓰면 완전히 다르게 보이곤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의 진짜 직업을 둘러싼 논쟁 못지않게 재미있는 것이 존 르카레라는 이름이다. 그는 가명을 쓰는 스파이의 특성상 실명으로 책을 출판할 수 없었고, 상관이 책을 읽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가명으로 내더라도 인세를 받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는 고민 끝에 이런 방법을 썼다. 은행에 입금된 인세를 바로 찾지 않고, 예금액이 일정 액수에 도달하면 연락을 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가 되자, 마침내 은행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전화를 받은 이후 그는 기분 좋게 사표를 던졌다고 하니, 그야말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로망을 실현한 인물이라 하겠다.    p.268~269

개인적으로는 안개 자욱한 스파이와 판타지의 세계를 산책하는 '영국'편이 흥미로웠다. <나니아 연대기>를 탄생시킨 C.S.루이스의 옥스포드, 그리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의 존 르카레, <자칼의 날>의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런던이다. C.S.루이스와 J.R.R.톨킨이 돈독한 우정을 쌓았고, 서로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나니아 연대기>가 띠고 있는 기독교적인 색채에 대한 배경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하드보일드 작품들을 좋아하고 즐겨 읽었던 독자로서 존 르카레와 포사이드의 작품과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 또한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을 여행하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산책하듯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관찰하며 걷는 것,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곳곳을 살펴보고 그 곳에 숨겨진 이야기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산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보티첼리와 단테의 피렌체, 클림트의 빈, 랭보의 샤를빌 메지에르, 고흐의 생 레미 드 프로방스 등 곳곳에 남아 있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덧 유럽이 가깝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유럽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도 들 것이다. 예술 기행 혹은 문학 기행이라고 해서 여행을 통해서 직접 체험하는 인문학 서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한 곳에 앉아 있으면서도 우리는 책을 통해 세계를 여행한다. 이 책도 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들을 통해 더 깊게 여행하는 방법, 더 감각적으로 산책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니 훌륭한 유럽 예술 여행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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