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 좋은 점은
생각지도 못한 소중한 이들이
내 옆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p.180
그림책 작가
윤지회, 어제까지 두 돌도 안
된 아들과 씨름하며 겨우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사이에 정신 없이 일하며 저녁 반찬을 걱정했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위암 4기라는 믿을 수 없는 선고를 받게
된다. 위암 4기
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은 7%, 그 말은
그녀가 5년 안에 죽을
확률이 93%라는
말이다. 대부분 항암 치료를
받다 악화되거나 수술을 해도 재발, 전이로 고통 받다 죽는다고 한다.
이 책은 윤지회 작가가
'위암
4기'
선고를 받은 날부터의 기록을 그림과 글로 엮어 낸 그림 일기이다.
위암 투병기라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이거나 감정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간 구질구질한 서글픔을 예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상큼 발랄한 표지 색상과 일러스트가 의미하듯이, 이 책은 온갖 항암 치료와 약으로 육신이
너덜너덜해진 순간에도 소소한 기쁨과 행복, 그리고 희망과 웃음을 잃어 버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이나 슬픔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래서 신파나 멜로 드라마를 그다지 즐겨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프지만 사랑스럽고, 슬프지만 씩씩해서 참 좋았다.
모두들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산다.
때로는 정말 지치고 힘들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조금씩 변하고 자라는
내 모습을 마주한다. p.372
병원 나이 38년 2개월, 두 돌 아기 엄마이자 무뚝뚝한 남편의
아내,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고
무민 캐릭터와 SF 영화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즐겨 하고, 아이를
재우고 웹툰을 보면서 피로를 풀고, 무서운 영화는 절대 못 보고 동물 학대와 장보기를 싫어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여자 사람. 하지만 지금은
8차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항암 약만으로 치료를 받으며 ‘이제 좀 살만 하다.’를 느낄 새도 없이, 발병 1년 6개월 만에 암이 다시 난소로 전이되어 다시 수술을
받고, 표적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건 ‘1년 안에
재발할 확률 80%’를 무사히
지나왔으며, 아이는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네 살 꼬마가 되었다.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그녀는 살아 있다.
계획한 대로 펼쳐지는 인생은
없고,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라고들 하지만, 이 책은
작가가 온몸으로 겪은 그 빗나감의 기록이기도 하다.
항암 치료 중에도 ‘아기는 나중에 가져요.’라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사, 난데없이 푸시킨의 <삶>을 이야기하며 수줍게 마음을
고백하는 ‘갱상도
사나이’ 아버지, 무뚝뚝한
걸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남편이지만 요동하지 않는
‘뚝심력’으로 묘한 위로를 선사하는 남편, 놀이터를 제 방 뛰놀 듯 천방지방 뛰다가도 이내
꽃잎 한 장을 주워 엄마 손에 꼬옥 쥐어 줄 줄 아는 아이,
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투병기를 우울하고 칙칙한 색깔이 아닌 화사하고 따뜻한 색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불만이 쌓이고,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 그녀처럼 되뇌어
보자.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뭘, 그냥
넘기자' 라고. 그렇게
예전보다 아주 조금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의 일상을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사기병이라는
제목은 '내 인생에 사기 같은
병, 위암사기병'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거짓말 같은
상황에 처할 때 이렇게 소리치고 싶어 진다.
"이건 사기야!
말도 안 돼!"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현실이고, 오늘을 버티고 살아내야 할 조건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매일매일 누리는 일상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자마자 윤지회 작가님의
SNS를 찾아가 팔로우를 했다. 작가님이
1년을 무사히 살아 왔고,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오늘도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