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자신의 세상을 역동적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그리어도 잘 알았다. 직접 하기는 힘든 일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서 뭔가를 보고 다른 사람은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당신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만 한다. 페이스 프랭크가 나타나서 그리어에게 그런 영향을 미쳤다. 물론 페이스는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는 걸 전혀 모를 테지만. 그녀가 모른다는 사실이 이제는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 게 잘못된 일 같았다.    p.72

딱히 유명하지 않은 대학의 신입생 그리어는 상대에 따라 끔찍하게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학구열 넘치는 학생이자 독서광이었으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법은 거의 없었다. 대학에 입학 후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기간에 같은 학교 남학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게 되고,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하던 그는 학교의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지만, 사실상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가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불공평한 처사였지만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어는 너무나 쉽게 여자를 혐오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던 와중에 수십 년간 미국 여성운동의 중심축이었던 60대 페미니스트 페이스 프랭크의 연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나서서 행동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페이스의 말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페이스는 그리어의 삶에 들어와 그녀가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가게끔 인도한다. 대학에 갓 입학해 세상물정 모르는 그리어와 60대 여성운동가 페이스의 만남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에 대한 흥미로운 서사와 함께 인생의 롤모델이자 우상의 감춰진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오히려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게 되는 성장 서사로서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있다. 이는 환상은 깨어지게 마련이고,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간다는 점에 있어서 누구라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서사이기도 하고, 그 과정을 진지한 주제와 세심함 감정 묘사로 표현해내고 있어 더욱 재미있게 소설로서의 매력도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남자들이 우리 의견을 좌우하게 할 수는 없어요."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내 몸으로 뭘 하든, 내 시간을 어떻게 보내기로 하든 전부 다 내 결정이에요.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해요."

"그거 마치 노래 가사 같네요. 내가... 결정을... 내려야.... ."     p.370

이 작품은 시의적절한 소재로 출간 즉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였고, 각종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배우 니콜 키드먼이 영화 제작을 발표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여자라면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겪어보았을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라,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여성의 야망, 우정, 욕망에 관한 화두를 던지는 이 작품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전 세계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는 놀라운 마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인 메그 월리처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더 와이프>라는 작품으로 만났었는데, 이번 작품 역시 곧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 작품은 여성의 연대와 야망,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와 페미니즘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그냥 소설의 서사 자체로도 매우 훌륭하고,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캐릭터와 이야기, 문장, 플롯, 그리고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에 이르기까지 완벽하다. 여성의 편에 서주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여자로 산다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읽는 내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지만,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가 줄 수 있는 재미도 놓치지 않고 있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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