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혁명 - 행복한 삶을 위한 공간 심리학
세라 W. 골드헤이건 지음, 윤제원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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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지금 앉아 있는 방의 형태부터 집에 들어오는 햇빛의 양, 당신이 사는 주택이나 아파트의 특징, 당신이 이용하는 인도나 도로의 너비와 모양)은 누군가의 '선택'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의뢰를 받고 만들었든 그냥 만들었든 건축 환경은 모두 인위적인 구성물이다. 다시 말해 얼마든지 다르게 만들 수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 앞에는 세상을 더 좋은 장소로 만들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펼쳐져 있다.    p.51

'신경과학과 건축', '뇌과학과 공간심리학' 이라니.. 대체 이들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걸까.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은 이 책에서 신경건축학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건축을 살펴본다. 그렇다면 신경건축학이란 무엇인가.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환경이 사람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학문이 낯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분야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환경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던 환경심리학의 범위를 확장한 것이라고 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모두 '인간의 손을 거쳐 탄생한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살아가는 장소들은 모두 누군가가 모습과 기능을 고민해 디자인한 건축물이니 말이다. 자연환경과 달리, 우리 주변의 건축환경은 모두 누군가가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상들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은 왜 휴가지로 자연친화적인 장소를 고를까?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의 정서가 좋다는 것이 사실일까? 천장이 높은 곳에서 정말로 창의력이 샘솟는지, 왜 수업을 받았던 교실에서 시험을 보면 결과가 더 좋은지, 그 동안 은연중에 그럴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사람이 생각을 하려면 마음속에 어떤 목표가 있어야 한다. 어떤 유명한 신경과학자는 뇌를 생각하는 장치가 아닌 '본질적인 행동 기관'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감각 인지란 세상에 있는 여러 존재에 '반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잠재적 준비 과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은 인식하든 그러지 못하든 특정 공간이나 물체, 구조가 제공하는 기회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방식으로 건축 환경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p.185

저자는 인지신경과학과 환경심리학 분야의 최신 연구 결과를 활용해 방, 건물, 도시 광장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우리가 형태와 패턴, , 색상, 소리, 질감 등에 보이는 반응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축 환경에서의 비의식적 인지 경험하기'라는 소제목을 보자면, 대체 뭘 이야기하려는지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서 뉴욕시 웨스트빌리지의 도시 경관을 한 페이지 가득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이 맨해튼 웨스트빌리지에 산다고 잠시 상상해보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다가, 냉장고를 열었는데 우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순간적으로 근처 가게에 다녀오기로 결정한 당신의 의식은 우유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가게의 점원에게 돈을 건네기까지 걸린 15분 사이에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그 안에 무수한 비의식적 인지'라는 것은 대부분 인접한 환경이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활동에 대한 복합 지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관문으로 가는 길, 눈높이에 있는 가게의 유제품 냉장고 선반, 놋쇠 손잡이가 달린 문 등등 건축 환경에 대한 비의식적 인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감각을 체감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은 건물 밖으로 눈을 돌려 아테네의 파르테논, 맨해튼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프랑스의 아미앵 대성당,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파리의 뤽상부르 정원, 베이징의 798 예술구 등 세계 최고와 최악의 건물, 조경, 도시 경관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사람의 눈높이에서 찍은 것으로 선별한 150장이 넘는 멋진 사진과 함께 하고 있어 시각적인 이해도 높여주고 있다. 이 사진들이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특별한 자신만의 원칙에 따라 선택했기 때문이다. 밤에 찍은 사진과 사람이 서 있을 수 없는 장소에서 찍은 사진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건축가들이 컴퓨터로 디자인한 건물 사진도 싣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이 워낙 발달한 탓에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모습과 완전히 다른 장소를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꾸며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꽤 많은 양의 사진들은 모두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 체감할 수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잇는 공간은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반드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건축물을 만드는 데 차이점은 대개 공간 디자인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민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살아갈 장소, 우리의 행복과 아이들의 건강한 정서를 형성할 곳으로 건축 환경을 평가한다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투자 가치와 건물 면적 외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길러준다는 데 있어서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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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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