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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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모험을 하기 위해서. 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많은 사람이 되어보기 위해서…’라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아마도더 많은 측면에서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더 과감하고, 더 다채롭고, 더 솔직하고, 더 교활하고, 더 깊고 더 다면적인 나 자신 말이다(그러고 보니 이건 거의 정신 함양이 아닌가?).     p.75~76

사실 나의 로망은 단 며칠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한 번쯤 가져 보는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늦은 새벽 잠이 들 때까지 거의 단 한 순간도 별 생각 없이,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없으니 말이다. 하루에도 열 몇 개씩 알람을 해두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채워 넣어 바쁘게 달려가는 것이 내 일상이다. 여행을 가서도 먹어야 하는 것, 보아야 하는 것, 해봐야 하는 것들을 하느라 일정 내내 좀처럼 쉴 틈이 없다. 소위 '멍 때린다'는 표현이나 '무위도식' 한다는 말을 한 번도 체감해보지 못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진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다양한 문학 장르를 넘나드는 글을 쓰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로버트 디세이가 진정한 휴식에 대해, 삶을 더 현명하게 즐기기 위한 게으름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요시다 겐코의 <쓰레즈레구사>, 시트콤 '핍 쇼'와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그리고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경유하여진정한 휴식이라는 키워드를 편안하고 위트 있게 풀어내고 있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무슈 귀스타브가 로비 보이 제로에게 했던 말, 무엇을 하든 아무 소용이 없다던 말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전부 끝나거든.... 그러고 나면 사후 경직이 시작되지." 바쁜 남자가 할 법한 그런 말이다. 봄날의 말벌처럼 바빴던 무슈 귀스타브는 좀 더 빈둥거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가 미처 삶을 알기도 전에 삶이 날아가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p.142~143

정신 없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휴식을 위한 시간이 너무도 필요하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워라벨(Work-life Balance)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실천하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성공지향주의, 완벽함에 대한 갈망, 스마트폰 등의 대중화는 점점 일과 개인의 삶을 분리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서 목적 없이 걷는 것은 낭비처럼 보이고, 늦잠 자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인맥에 상관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불필요한 일 같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대신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서 나만 뒤처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올해 70대 중반을 맞이한 저자는, 빈 시간에 무언가 실용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사실 삶을 즐기는 것, 삶 속에서 뛰노는 것, 인간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 깊이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점점 늘어나는 여가 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했을 때 우리 삶에 깊이가 생기고 행복으로 가까워진다고 말이다. 여가란, 결코 물질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순전히 그 즐거움을 위해서 자유로이 선택한 것, 빈둥거리고, 깃들이고, 단장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 광범위한 영역을 두루 아우를 때 쓰는 단어라는데, 우리는 그 동안 그 뜻을 너무 모른 채 앞만 보면서 살아온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느긋하게 있을 때, 가장 치열하고 유쾌하게 인간다울 수 있다는 말이 궁금하다면, 워라밸의 시대, 황금 같은 휴식 시간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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