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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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뇌가 조금 들어 있는 거지?"

"맞아."

"그렇지만 넌 역시 너겠지........?"

"무슨 소리야. 난 나지. 다른 누구도 아니야."

"그럼 만약 뇌를 전부 교체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역시 넌 너일까?

"그건...."나는 조금 생각한 뒤 대답했다. "내가 아니겠네. 그렇게 되면 내가 아니라 당연히 원래 뇌의 주인일 테지."      p.102~103

산업기기 제조사의 서비스공장에서 일하는 나루세 준이치, 직장 내 그의 별명은 '착한 아이'였다. 윗사람이 하는 말은 뭐든 예, 예 하면서 잘 듣기 때문이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고, 화방에서 일하던 메구미와 가까워져 연인이 되었다. 좁은 원룸 아파트에 살던 그는 좀 더 나은 방을 얻으려고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들렀는데, 그 곳에서 무장강도 사건에 휘말린다. 총을 들이대고 돈을 요구하는 범인의 모습에 손님들은 모두 두 손을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그런데 서너 살쯤 되는 여자아이가 창문을 타고 넘으려던 걸 범인이 발견하고 권총을 소녀에게 겨누고, 나루세는 소녀를 구하려다 머리에 총을 맞게 된다. 사경을 헤매던 그는 '뇌 이식'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진다. 세계 최초 성인 뇌이식 수술은 세상에 화제가 되고, 나루세는 무사히 의식을 회복하고 깨어난다. 그런데, 그에게 조금씩 사소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루세는 마음이 약하고, 착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아주 평범하게, 두드러지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그가 수술 후 달라진다. 온순하며 낯을 가리는 타입이었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도 거침없고 전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연인 메구미의 얼굴에서 주근깨가 거슬리게 느껴지고, 대충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한심해 보이고, 시간 낭비를 하는 것처럼 보여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진다. 급기야 직장 선배와 술을 마시다 폭력을 휘두르고, 동료들은 점차 그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물을 보는 눈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 그림에 재능이 사라지고, 흥미를 잃게 된다. 그렇게 취향, 가치관, 성격 등 많은 것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는 분명히 예전의 나루세 준이치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루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저 아저씨....." 노리코가 입을 열었다. "전에 만난 그 아저씨 아니야."

순간 분위기가 경색되어 다들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부인이 웃으며 노리코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니? 함께 인사드리러 가기도 했잖아. 까먹었어?"

"아니야."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 아저씨 아니야."

나는 입안이 바짝 말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예리하다.     p.235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 데뷔 6주년을 맞이한 1991년에 쓴 작품이다. 현지에서는 100쇄를 거듭한 끝에 문고본만 75만 부, 125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고, 드라마와 영화로 두 차례나 영상화된 작품이기도 하다. 원제는 '변신'으로 뇌 수술 이후 주인공이 겪는 인격에 변화가 생기는 과정을 작가는 '나루세 준이치는 변신하는 중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했다. 국내에는 '변신'이라는 제목으로 2005년에 출간되었었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전면 재번역을 거치고 작가와의 긴밀한 논의를 바탕으로 새 제목 <사소한 변화>로 출간되었다. 2019년 현재까지도 실제 사람에 대한 뇌이식이 수행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 무려 수십여 년 전에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당시에 '뇌 의식'이라는 소재가 얼마나 파격적이었을 지 상상이 간다. 게다가 작가는 출간 후 인터뷰를 통해 “<사소한 변화>는 어느 날 버스에 타고 있던 15분 동안 플롯을 거의 완성한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그러한 플롯의 힘이 책을 읽는 내내 질주하는 스피드로 작품에 몰입하게 해준다.

이야기는 인격의 변이를 겪게 되는 나루세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어 더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간이라지만, 하루가 다르게 원래 자신의 모습을 잃어 버리는 주인공이라 당장 다음 페이지에서 어떤 일을 벌어질지 등장인물도, 독자들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나루세를 관찰하는 도겐 박사의 수술 이후 연구 기록과 형사 구라타 겐조의 수사에 관련된 메모, 예전의 그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인 연인 메구미의 일기가 교차 진행되어 더욱 긴장감 있는 플롯을 쌓아 가고 있다.

 

만약 누군가 사고나 불치의 병으로 죽음의 늪을 헤맬 때, 다른 사람의 뇌 일부를 이식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단 그럴 경우 인격에 변화가 생길 우려가 있다면.. 당신은 그래도 수술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자신의 모습 그대로 죽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만약 정말 뇌 이식이 가능해진다면 말이다. 타인의 뇌를 이식해 원래 그 사람의 자아와 완전히 다른 것이 형성된다면, 그럼에도 그 사람은 원래 자신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대체 인격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의학이 발달해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지금, 윤리적으로 한 번쯤 고민해볼 만한 문제인 것 같다. 우리는 누구누구답다, 나답다,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 사람에게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이나 행동의 경향이 그 사람을 규정하는 본 모습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 다운 모습일 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인데,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타인의 자아를 갖게 되었다면 그건 더 이상 ''라고 볼 수 없지 않을까. 작품의 극적인 재미와 완성도도 뛰어 나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휘몰아치는 광풍에 휩싸여 있다가 벗어난 뒤, 이렇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작품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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