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아지 웅진 모두의 그림책 10
박정섭 지음 / 웅진주니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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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여기서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

어쩌면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은 산책길이었을 것이다. 강아지에게 뼈다귀 하나 물려 주고,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주인은 어디론가 가 버린다. 남겨진 강아지는 주인이 시킨 대로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주인이 나를 데리러 올 테니까, 그렇게 나와 약속했으니까, 그런 믿음으로 강아지는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

반짝이던 하얀 털이 온갖 먼지와 매연에 숯검정이 될 때까지, 그리하여 검은 강아지가 되어 버릴 때까지 말이다.

 

강아지는 의리의 동물이다. 실제로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를 하염없이 같은 자리에서 기다린 강아지의 사연이 방송되었던 적도 있고, 주인이 먼저 죽고 나서 매일 같이 주인의 무덤에 가서 시간을 보내던 강아지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온 적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려견이라는 존재가 가족이 아닌 악세사리나 장난감처럼 취급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릴 때는 예쁘니까 쉽게 키우려고 하지만, 키우다가 병이 들거나, 귀찮아지면 너무도 쉽게 버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멀쩡한 강아지를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버렸다는 사람의 행동에 누군지도 모르는 그를 향해 너무 화가 났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생명이 가지는 무게감을, 소중함을 종종 잊어 버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게 하고 싶다. 그럼 최소한 자신이 쉽게 버린 그 생명이 어떤 생각을 했을 지, 어떤 마음으로 주인을 기다렸을 지 알게 될테니 말이다.

 

예전에 방송에서 가수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노래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내용이 아니라 자신을 버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감정을 표현한 거라는 걸 알고 가슴이 먹먹해졌던 적이 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잠깐이면 될 거라고, 여기 서 있으라고 그렇게 말한 대상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이 그림책 속에서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마음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은 강아지가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버려진 후 강아지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어 더욱 뭉클했다. 검은 강아지가 되어 버린 강아지가 자신과 똑 닮은 친구를 발견해, 주인이 올 때까지 함께 놀기로 하고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그런 순간들 속에서는 검은 강아지가 덜 외로워 보여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마도 반려견을 키운 적이 있다면, 혹은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쯤, 돌아오지 않을 무언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에는 특별한 부록이 숨겨져 있는데, 바로 그림책 작가 박정섭과 뮤지션 슌의 <검은 강아지> CD이다. 책의 첫 번째 페이지에 있는 집의 문을 열면 보이는 QR코드로도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림책에는 담기지 않은 검은 강아지의 회상, 주인과의 추억들이 뮤직 비디오로도 제작되어 담겨 있으니 놓치지 말고 봐야 한다.

그림책과 음악, 영상 분야의 컬래버레이션이 신선했는데, 하나의 작품을 이렇게 다채로운 방식으로 읽고 보고 듣게 되는 체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검은 강아지의 모델은 실제 박정섭 작가와 오래도록 함께했던 강아지 공주라고 한다. 책이 출간되기 3년 전 공주가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는데, 공주가 그에게 주고 간 소중한 선물들을 추억하며 만들어진 그림책인 셈이다. 그래서 강아지의 움직임이나 표정 등에 모두 반려견 공주에 대한 작가의 추억과 시간이 쌓여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생생한 서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해 버려지는 유기견의 수가 10만 마리를 넘는다고 하는 충격적인 보도를 들었다. 대체 그들이 뭘 잘못한 걸까. 남겨진 동물들은 죄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주인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날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잊어버린걸까.. 버린 건 아닐거야."

너무 예쁜 그림책이었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한참 먹먹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겠지만, 어른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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