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커는 창가에 앉아 거리를
내다보았다. 고향인 오하이오와
무척 비슷해 보였다. 반쯤은
살아 있고 반쯤은 죽어 있는 곳. 실제로는 죽은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어쩌면 중요한 의미에서, 재미슨은 아까 정곡을 찔렀다.
나는 카산드라와 몰리의 살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잡으려
하고 있어. 이 일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 세상에는
늘 살인자들이 있을 테니까. 그러니 이게 내 세상이다. 내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 p.49
이 시리즈의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는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이다. 그는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 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이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5개월 동안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의 삶은 처참히 무너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범인이 스스로 경찰서에 들어와
자백을 한다. 데커는 그와
관련된 사건 해결에 활약한 것을 계기로, FBI
미제 수사팀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이번 작품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에 이어 네 번째 시리즈이다. 에이머스 데커는 동료 FBI 요원인 알렉스 재미슨을 따라 그녀의 언니 집에 휴가차 오게 된다.
그들의 상관인 특수 요원 보거트가 데커에게 휴가 비슷한 거라도 좀 내라고 닦달하지 않았다면 선뜻
그녀를 따라 나서지 못했겠지만, 사실 달리 갈 만한 데가 단 한군데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곳은 배런빌이라는 소도시로 한때 제분소와 광산으로 번영했으나 지금은 쇠락하여 폭력과 마약만이
들끓는 곳이다. 그날 데커는
밤하늘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살지 않는 뒤쪽 집에서 전등이 깜빡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단단한 물건이 부딪히는 쿵
소리, 뭔가를 긁는 소리에
이어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수상한 느낌에 데커는 뒷집을 향해 달려가고,
그곳에서 두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침 이 곳에서는 지난 2주 사이 벌써 네 차례의 기괴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경찰은 갈피조차 못 잡는
상태였다. 데커와 재미슨은
현지의 경찰들과 함께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데커는 화염을 피하다 머리에 부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완벽한 기억력과 공감각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데커 씨,
당신은 토비하고 다른 사람들을 죽인 자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내가 하려는 일입니다."
"토비는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내 생각엔 정말이지 그렇게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p.298
이 시리즈만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아마도 에이머스 데커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에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시리즈들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당한 사고로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댓가로 가지게 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어떤 기억을 찾으려고 할 때 머릿속의 영상 저장 장치를
켜면, 눈 앞에서 그 형상들을
마치 녹화된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 보기라도 하듯이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능력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도록 만든다. 거기에 더해 데커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하는 수사란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고, 그
능력은 매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던 그 완벽한 기억력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작품은 데커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코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캐릭터의 변화가 앞으로 이어지게 될 시리즈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더욱 기대가 되는 작품이고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들며 인물들의 관계가 연결되고
교차되면서 플롯은 더욱 복잡해졌고, 에이머스 데커에게 새롭게 닥친 문제점이 그의 내면과 행동에 모두 영향을 끼쳐 변화의 지점을 시사하고 있다. 1996년 데뷔작 <앱솔루트 파워> 이래로 지난 20여 년간 30권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며 뛰어난 작품 완성도와
대중적 재미로 사랑 받는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는 판매부수로만 봐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함 범죄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억 3천만 부나
판매되었으니 말이다. 대중성과
작품의 완성도를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재미와 수준을 함께 보장해준다. 그리고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야말로 이제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올해 4월에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Redemption'이 출간된 상태이다.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진화하는 캐릭터 '에이머스 데커'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어떤 활약을 보여 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