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이 여자를 죽이고 싶다―. 온몸의 혈관에 매혹적인 독소가 내달리기 시작한 듯, 몸도 마음도 그 욕망에 매였다. 지금이라면…… 이 욕망을 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더는 주저할 게 없다. 자신은 곧 죽는다. 경찰에 잡히는 것은 두렵지 않다. 와카쓰키학원 아이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으나 욕망에 저항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곧 자신은 죽는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내내 봉인해 왔던 욕망을 풀어버리고 싶었다.    p.50~51

사카키는 데이 트레이더로 젊은 나이에 주식으로 큰 돈을 벌어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위암 말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고, 절망하기 보다는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 전부터 살인에 대한 욕망이 있었는데, 여자를 안을 때면 결정적인 순간에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살인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그 동안은 그러한 욕망을 억지로 누르면서 살아 왔지만, 어차피 이제 자신은 곧 죽게 된다. 그러니 경찰에 잡히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봉인해 왔던 욕망을 풀어 버리기로 마음 먹게 되고, 살인에 대한 욕망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형사 아오이는 3년 전에 조기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해 회복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위 상태가 좋지 않았고, 병원에서 암이 재발했고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일 때문에 위독한 아내를 돌보지도 못했고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지도 못했던 그였다. 그 이후로 자녀들과의 관계도 틀어져 버린 중년의 형사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살인범의 체포에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곧 두 자녀들은 부모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질 테고, 이런 경우 남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말이다. 그렇게 비슷한 시기에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두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남자는 남은 시간 동안 연쇄 살인을 시작하고, 나머지 한 남자는 자신의 남은 목숨을 걸고 범인을 체포하려고 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동일한 운명 속에서 상반된 선택을 향해 달려가는 두 남자의 최후의 대결은 놀라운 흡입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재미있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오랜 바람을 이룬 자신과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 범인을 잡으려고 하는 형사라. 이토록 재미있는 만남이 또 있을까. 사카키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이 눈으로 범인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싶어. 언젠가 사형대에 매달릴 그 녀석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그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사형대에 매달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쯤 자신은 이미 죽어 버렸을 테니까.    p.261

사회파 추리의 강자 야쿠마루 가쿠는 매번 묵직한 미스터리를 그려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용서와 복수라는 다소 어둡고 무거운 주제가 이렇게 술술 읽혀도 되나 싶을 만큼 쉽게 읽히고,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이 그의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었다. 또한 사회성 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장황한 설교를 늘어 놓아 지루하게 만들지 않고, 미스터리와 추리적 요소와 스릴러적인 템포로 이야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점도 야쿠마루 가쿠만의 장점이다. 한마디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로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번 작품 역시 가독성은 나무랄 데 없이 뛰어났다. 다만, 다소 작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들이 눈에 띄어 아쉬웠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애초에 연쇄 살인을 시작한 남자와 그를 체포하려는 형사를 같은 병원에 다니는, 말기 위암 시한부 환자로 설정한 것부터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었음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남자 친구의 비밀스러운 삶을 알아낸 여자가 그를 신고하려는 찰나에 갑자기 교통 사고를 당해 죽어 버린다는 설정 또한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오이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때마다 그저 '형사의 감'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되고 있어 그 맥락없음에 의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이렇게 아쉬운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쉽게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적인 한 방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앞둔 범인에게 형사처벌 보다 더한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니 말이다. 야쿠마루 가쿠는 '범인을 잡는 과정보다 잡은 후 형사처벌 이외의 요소로 어떻게 대가를 치르게 할지에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는데, 그래서인지 마지막 결말 부분은 짧게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매우 임팩트있는 여운을 남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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