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개정판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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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실은 언제나 그랬다. 인생은 결국 선택의 문제고, 어느 쪽을 선택하건 선택하지 않은 쪽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이 선택의 문제라면 인생은 이를테면 자장면과 짬뽕처럼 중국집의 메뉴 같은 것이 되어 버리는데, 살아 보면 알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인생은 그냥 닥치는 건지도 모른다. 닥치고, 수습하는 일의 반복이다.   p.99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려고 하는 한 사람의 솔직하고 유쾌한 이야기가 <온전히 나답게>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온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이대로 살아도 좋을지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자신감을 심어 준 이 책이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다시 한 번 세심하게 책 속의 문장을 매만지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화한 작가의 생활과 생각을 새롭게 담았다고 한다. 우선 쳅터의 구성과 차례의 변화를 주었고, '그 후의 이야기'라는 새로운 글이 추가되었다.

나답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나다운 것은 무엇이고, 나답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저자 역시 말한다. 3년 전에도 그랬지만 자신은 여전히 나답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지금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부족하다는 뜻인지,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 있는 나다운 나, 진짜 나를 찾아내야만 하는 것인지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온전히 나다운 상태라는 건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마음에 들고 가끔은 내가 싫고, 가끔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고, 가끔은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 아마도 누구나 다 그럴 테지만 말이다.

살다 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누가 아주 작은 돌만 하나 던져도 우리 삶을 떠받친 토대는 삐걱거릴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약하게 만들어진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인생의 결과 같은 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관심을 쏟을 만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신경을 쓰고 살면 너무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만이 최선이다.     p.265~266

이 책은 저자의 시시콜콜하고 사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오롯한 '생활'과 일상의 풍경들이 모여 누군가의 인생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소소한 일들이 쌓이고,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어 삶이라는 거대한 풍경을 구성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매일 겪게 되는 인생의 하찮은 것들을 자주 놓치고 산다.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저자는 가끔 좀 비싼 빵집에 가서 갓 구운 단팥빵을 산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단팥빵을 야금야금 다 먹어 치운다. 그녀는 갓 구운 단팥빵 안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한다. 열량, 따뜻함, 부드러움, 달콤함, 기쁨, 배려, 다정함, 담백함... 나는 그녀가 산 종이 봉투 안의 단팥빵을 상상해 본다. 어쩐지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나 역시 갓 구운 빵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별 거 아닌 빵 하나가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배려가 되고, 사랑이 되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세상에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알아주든 말든, 룰루랄라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종종 그런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썼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꽤 살 만한 곳인 것만 같다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세상의 한구석에서, 남들이 뭐라고 하든 즐겁게,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나다운 삶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느긋한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일상의 하찮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산책하듯 가볍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어졌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담담하지만 통찰력 있는 문장들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그녀는 어깨에 힘을 빼고 최대한 가볍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어버렸다면, '내일'을 위해 사는 대신 '오늘'을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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