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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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음악이 마법을 보여 줄 때가 있다. 그 마법은 최고의 연주자와 최고의 곡목, 최고의 상황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기적적인 순간에만 일어난다. 그 흔치 않은 기적이 지금 일어났다. 기적을 보여 준 연주자에게 청중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하쓰네를 신경 쓰면서도 하염없이 박수를 쳤다.  p.18

시가 2억 엔인 첼로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완전한 밀실에서 홀연히 사라진다. 세계적인 라흐마니노프 연주자인 쓰게 학장의 손녀인 쓰게 하쓰네는 며칠 전부터 매일 스트라디바리의 첼로로 연습 중이었다. 어제도 저녁 6시까지 연주를 하고 첼로를 케이스에 넣은 채 보관실에 들어가 지정된 보관대에 되돌려 놓았다. 경비도 틀림없이 확인한 사항이었고, 입퇴실을 기록하는 카드판독기와 CCTV로 확인해도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보관실에 입실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출입구도 문 하나였고, 창문도 없었고, 은행 금고나 마찬가지인 보관실에 접근한 사람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어린아이 크기만 한 악기가 사라진 걸까. 아무도 침입할 수 없고 탈출할 수도 없는 실내에서 말이다. 사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어진다. 피아노를 못 쓰게 만들고, 학장을 해치겠다는 경고장이 날아들고...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서로를 의심하느라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는데.. 과연 이들은 정기 연주회를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주인공 아키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지만,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이 유복해서 넉넉히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고민이 많다. 학비를 마련하느라 아르바이트 덕분에 정작 연습에 소홀해지는 주객전도가 된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느라 콩쿠르는 꿈도 못 꿨는데, 이번 정기 연주회 무대에 오르게 된다면 밀린 학비 문제도 해결되고, 졸업 후 오케스트라에 입단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는 기회였다. 이야기는 아키라가 가을 정기 연주회에서 콘서트마스터를 맡게 되는 과정으로 시작해, 불길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에서 오케스트라 멤버들을 이끌게 되는 성장 드라마로도 읽을 수 있다. 경기 침체와 구직난, 그리고 꿈을 방해하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 등은 우리의 현실 속 평범한 대학생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련의 사건들에 숨겨진 트릭을 찾아내 범인을 밝혀내고 반전을 넘어 진실에 도달하는 미스터리로서의 이야기도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취사선택의 연속이거든. 몇 시에 일어날지. 뭘 먹을지. 뭘 하며 지낼지. 그리고 뭘 목표로 할지. 수많은 선택이 쌓여서 지금에 이른 거야. 사람들은 대부분 서툴러서 뭔가를 선택하면 그 외의 것을 버려야 해. 버린 것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선택한 것을 소중히 해야만 하지."    p.214

<안녕, 드뷔시>의 뒤를 잇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음악 미스터리인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꿈과 현실 속에서 고민하는 음대생들의 리얼한 이야기 속에서 미스터리한 사건과 그것을 밝히기 위해 전작에 이어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는 피아니스트 탐정 미사키 요스케의 활약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만의 장점은 굉장히 치밀하고 유려한 음악적인 묘사에 있다. 실제로 음악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아름답고 놀랍게 표현된 단어들은 새삼스럽게 나카야마 시치리라는 작가에게 감탄하게 만든다. 송곳 같은 첫 음이 하늘을 가르고, 애수와 비애가 응축되어 있는 소절이 이어지며, 마치 망치로 두드리듯 강하고 또렷한 음이 연주되고, 활이 뱀처럼 구불거리며 오르내린다. 완만한 음울함이 가슴속 깊이 숨어들었다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긴박감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등등.. 음악에 관한 묘사들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든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플롯과 반전, 캐릭터 모두 좋아하지만, 음악을 글로 들려주는 경지는 단연코 최고가 아닐까 싶다.

음악 미스터리인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는 <언제까지나 쇼팽>, <어디선가 베토벤>, 그리고 <다시 한번 베토벤>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48세에 늦깎이로 등단해서, 그 후 7년간 작품을 28편이나 써내는 왕성한 집필 속도를 자랑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모든 작품들을 신속히 국내에 소개해주고 있는 출판사가 있어서, 독자 입장에서 매우 반갑게 기다리고 있다. 곧 출간될 나카야마 시치리의 신작은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악덕의 윤무곡> 과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참 이렇게 다양한 시리즈의 작품을 한 꺼번에 가지고 있는 작가도 드문데, 나카야마 시치리는 각기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모두 완성도가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인 것 같다. 그의 놀라운 집필 속도를 응원하며, 다음 작품도 빨리 만나보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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