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이유가 통한다고 생각하지 마."

"은행이 이렇게 부조리한 조직인 줄 몰랐군."

한자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걸 지금 알았어? 그렇다면 한 가지 더 가르쳐주지. 은행이란 곳은 말이야, 인정사정도 없고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이야. 똑똑히 기억해둬."     p.194

한자와 나오키는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서부 지점에서 융자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이야기는 서부오사카철강이라는 회사의 부도로 은행에서 대출해준 금액 5억 엔이 고스란히 손실이 될 위기에 처하면서 시작한다. 처음부터 그 회사와 거래를 밀어붙인 것은 우수지점 표창을 노린 아사노 지점장이었다. 회사 사장인 히가시다의 태도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고, 재무 분석을 제대로 해볼 시간도 주지 않고 눈앞에 매달린 실적에 눈이 멀어 당장 품의서를 제출하라는 아사노의 지시에 긴급 품의로 진행된 건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되자 아사노는 모든 책임을 한자와 한 사람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자와는 그렇게 간단히 회사의 희생양이 될 생각이 없었다. 라인도, 사내 정치도 없이 오직 실력만을 믿고 일해온 그는 부당한 압력에 굴복할 생각도,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채권 회수라는 방법 밖에 없었다. 종적을 감춘 히가시다 사장을 찾아내, 그를 걸레 짜듯 철저하게 쥐어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정하고 잠적한 이를 대체 어떻게 찾아낼 것이며, 그를 찾아낸다고 해도 그만한 재산이 남아 있다는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실패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상사의 방식은 비열하기 짝이 없었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지만, 사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상황을 타개할 묘안은 떠오르지 않았는데.. 과연 한자와 나오키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도쿄중앙은행의 행원일 뿐이지. 즉 당신과 똑같은 일개 직원에 불과해. 경영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 내 주머닛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나는 한 사회인으로서 당신이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 없어. 아무리 귀찮고 힘들더라도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져야 할 거야."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한자와의 기세에 눌려서 나미노는 뻐끔뻐끔 입을 움직일 뿐 말을 할 수 없었다.     p.227

이 작품은 시작부터 분식회계, 재무분석, 배당, 페이 오프, 차입금, 내용증명 등등의 금융 관련 단어들이 난무하면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이 페이지 가득한데 전혀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다. 저자인 이케이도 준이 실제로 일본 대형 은행에서 7년 동안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 더욱 실감나는 현실성이 그려진 작품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은행원의 기업 대상 금융 업무, 조직 내의 피 튀기는 정치 싸움, 비리를 덮기 위한 무자비한 꼬리 자르기 등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만한 에피소드들을 매우 리얼하게 그리고 있어 직장인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당한 일을 당해 억울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만 해봤던 "당한 만큼 갚아주는" 복수를 실제로 감행할 수 있는 인물을 통해서 일종의 대리만족이라는 경험도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너무도 유명한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 소설이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누적 집계 570만 부가 판매된 소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전 4권으로 곧 나머지 작품들도 출간될 예정이다. 버블경제 시기에 대기업 은행에 입사하여 수많은 사회의 적과 싸우는 열혈인물 '한자와 나오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50,4%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그에 못지 않게 국내의 일드 팬들에게도 화제였던 작품인데, 최근 드라마 시즌 2가 드디어 제작에 돌입했다고 한다. 2020 4월 예정으로 한자와가 은행으로부터 쫓겨난 뒤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해서 벌써부터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먼저 원작 소설 4권을 시리즈로 읽으면서 그 설레임을 기다리면 더 좋을 것 같다. 무능한 조직과 사회에 제대로 된한 방을 날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래서 현실에선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정의가 이긴다'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