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가지 레시피 - 집 떠나는 아이에게 전하는 가족의 식탁
칼 피터넬 지음, 구계원 옮김 / 이봄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아빠, 저예요. 바쁘신 거 아는데 죄송해요. 지금 볼로네제를 만들려고 하는데 간단하게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끊지 말고요."

"물론이지." 당연히 끊을 생각은 없었다.

"다행이다. 볼로네제 만들 때 제일 좋은 고기는 뭐예요?"

"글쎄, 집에 뭐가 있는데?"

"지금 사러 가려고요."     p.159

언젠가 소설가 공지영이 매우 간단한 요리법을 상황에 맞춰 딸에게 소개하면서, 엄마로서 자식에 대한 애정과 조언을 담고 있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레시피 책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간단한 요리법들 투성이었지만, 재미있는 건 그 책을 읽다 보면 요리에 관심이 없었던 이들이라도 "맛있겠다, 나도 한번 만들어볼까'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수많은 실패와 시련들을 겪어 나가야 할 자식에게 자신만의 요리법을 전해주는 엄마라니, 너무도 뭉클하고,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책은 셰프인 아버지가 집을 떠난 아들에게 레시피를 알려주는 책이다. 더 전문적이고, 구체적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우아하고,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고, 유머러스하며, 감동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소재의 레스토랑셰 파니스의 셰프 칼 피터넬은 본격적인 저녁 영업이 막 시작하려는 바쁜 와중에 뉴욕에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볼로네제 만들 때 고기는 뭐가 좋아요? 로스트 치킨은 어떻게 만들었죠? 등등..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집을 떠난 뒤, 그렇게 레시피를 묻는 전화를 받게 된 아빠는 아들에게 재미있고 쉽게 요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 주게 된다. 셰프들이 정작 집에서는 요리를 거의 안 한다는 일종의 불문율과 달리 그는 집에서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자주 해주었던 아빠였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준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주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레시피들을 적어 보낸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간편하고 맛있는 요리를 제대로 완성하고, 요리에 실패했을 때 최대한 수습하고, 요리 실력을 한 단계 높이고자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설명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러니 요리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북인 셈이지만, 사실 요리를 매일 같이 하는 숙련자들에게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와 팁들이 가득하다.

세상에는 진심으로 아끼는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그 음식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음식들이 있다. 심지어 그게 내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황금색 폴렌타 덩어리가 손도 대지 않은 채 접시에 남아 있는 광경은 너무나 분명한 물증인데도 나는 우리 아이들이 폴렌타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단지 아이들이 아직 잘 몰라서 그럴 뿐, 끈기를 가지고 계속 시도하다보면 언젠가는 폴렌타를 맛있게 먹게 되리라.   p.219

제목은 '열두 가지 레시피'이지만 사실 열두 가지 방법의 요리 레시피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토스트, 달걀, , 샐러드, 파스타, 채소, , 그릴 구이 등의 보편적인 식재료와 요리 방법이 크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 열두 가지이고, 그 속의 내용들을 토대로 무한대로 변주해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이고, 너무도 간단한 레시피들이지만 이것만 충분히 습득하면 다른 복잡한 요리들도 무난하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주요 레시피 뿐만 아니라 기본 요리를 변형한 레시피들이 여럿 소개되어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사랑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레시피를 담고 있는 요리책임에도 불구하고, 대화체 형식의 에세이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요리책에서 순서대로 방법과 사진이 구성되어 있는 레시피들보다도 훨씬 더 쉽게 와 닿아 직접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셰프 만의 비밀스러운 팁들도 가득하다. 사실 건조한 상태로 판매되는 허브들은 누구라도 손쉽게 사용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마른 허브는 죽은 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신선한 허브를 구할 수 없다면 차라리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조언한다. 애호박은 늘 찌거나 볶아서 먹었는데, 레몬과 올리브유만 있다면 생 애호박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집에서 채소 튀김을 할 때는 항상 요구르트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오늘 저녁에 당장 시도해보고 싶은 튀김 요리 방법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수해주고, 또 엄마가 딸에게 전해주는 레시피에는 그 가족만의 특별한 삶의 풍경이 담겨 있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게 마련이고, 그게 결혼이든 학업 때문이든 간에 난생 처음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되면 가장 먼저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요리일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단순히 내가 직접 해볼 수 있는 레시피 뿐만이 아닌 것이다. 처음으로 혼자 제 발로 세상에 서게 되는 방법,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어른이 되는 방법,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는 관계라는 의미와 가족이라는 것의 소중함 등등이 모두 담겨 있는 책이니 말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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