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거짓말 : 금기 속에 욕망이 갇힌 여자들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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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딸들더러 남자들의 먹잇감이 되려고 그러느냐 입이 닳도록 닦아세우는 대신 당신의 아들에게 '너는 여자 사냥꾼'이라고 충고하는 걸 그만두세요. 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대신 아들들에게듣는 법을 가르치세요. 딸들에게 치마를 입지 말라고 하는 대신 아들에게 치마는 섹스 초대가 아니라는 걸 이해시키세요. 딸에게 전신을 가리라고 강요하는 대신 아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여성은 몸뚱이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걸.”    p.38~39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쓴 여성에 관한 가장 실제적이고 현재적인 인터뷰 에세이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다룬 뜨거운 데뷔작 <그녀, 아델>과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성과 숨겨진 존재로서 여성을 조명한 작품 <달콤한 노래> 이후 세 번째 만나는 작품이다. <달콤한 노래>는 강요 받는 모성, 경력 단절 여성, 산후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 계급적 소외를 겪는 빈곤층의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고, <그녀, 아델>은 성의 성욕에 비해 은폐되고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의 성욕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이었다. 슬리마니는 단 두 번째 작품으로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12번째 여성 작가로 이름을 올렸고, 그녀의 작품은 여성에 관한 가장 현재적이고 세계적인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2016년 독일 쾰른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유럽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크게 보도된 이후, 모로코 출신인 레일라 슬리마니는 여성의 욕망이 가장 금기로 여겨지는 자신의 고향에 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 결과물인 이 책은욕망을 품을 권리조차 가져본 적 없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슬리마니의 영원한 주제인여성에 대해 소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이 책은 무슬림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걸쳐 있는 여성 문제에 관한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나아갈 방향에 이야기한다.

 

 

그 모든 상황들은 거대한 위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는 변명 아래 그 누구도 범죄를 고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성들이 더 자유롭게 사는 사회가 반드시 종교를 거스르는 사회는 아니라고, 그건 반대로 여성들을 오히려 더 잘 보호해주는 사회인 거라고 나는 설명한다. 놀랍게도, 보모도 인정한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이 모든 건 이슬람교의 문제가 아니야. 원인은 딱 한 가지지. 남자들이 문제야."   p.108~109

 

레일라 슬리마니의 바람은 자신을 찾아온 여성들의 마음속 이야기들을 가공 없이 날것 그대로 내보내고 싶다는 거였다. 파르르 몸이 떨릴 정도로 강렬함을 남긴 말들, 때로는 흥분시키고 때로는 감동을 준 이야기들, 분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서고 싶게 만들던 이야기들. 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똑바로 바라보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이 사회 속 삶의 고통스러운 파편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고 말이다. 종교와 남성 중심 사회로 전락한 모로코의 문화, 성적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로 인해 섹스는 강박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모로코 사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행동은 굉장히 용감무쌍한 행동이었다는 걸,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그녀는 서두에 밝히고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로코뿐 아니라 알제리와 튀니지 등에서 살고 있는 여러 방면의 사람들이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독립 라디오 진행자, 저널리스트, 경찰, 교수, 영화 감독, 매춘부, 의사, 페미니스트, 자신의 독자 등을 인터뷰했다. 모로코에서는 동성애, 매춘, 혼외 정사가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실제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재력이 있고 성 문제에 대해 제한을 받지 않는 남성들은 마음껏 성을 이용하고 착취한다. 반대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한 여성들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이것이 비단 모로코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여성, 성 소수자,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유사한 문제들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말한다. 모로코,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의 여성들에게, “여성의 욕망할 권리는 곧 여성의 인권이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모든 여성들의 삶은 더 없이 중요하며, 또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고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다. 레일라 슬리마니의 영원한 주제가 바로 '여성'이라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녀의 다음 소설이 더 기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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