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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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업자는 상상해선 안 돼. 표적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혹은 이 사람이 죽으면 곤란한 사람이 있겠지 같은 걸 상상해선 안 된다고. 반대로 표적이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이런 녀석은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 돼. 상상은 감정 이입과 이어지지. 인간은 감정이 들어간 상대에게는 냉정해질 수 없어. 즉 죽일 수 없다는 말이지."   p.27~28

사람들은 청부살인업자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사람을 상상할까. 어두운 양복을 입고 왼쪽 옆구리에 권총을 숨기고 있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 마르고 눈이 쫙 찢어진 얼굴에 조직 폭력배 지시로 움직이는 외국인? 러프한 재킷을 입은 핸섬한 터프가이?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청부살인업자는 이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도미자와 미쓰루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평범한 경영 컨설턴트를 하며, 부업으로 청부살인 일을 하고 있다. 보수는 1인당 도쿄 증시 일부 상장기업 사원의 평균 연봉인 650만 엔. 세금을 내지 않는 수입이라 1년에 한 명만 죽이면 경영 컨설턴트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 물론 위장을 위해 계속하고 있지만 말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이를 받아들일지를 3일 안에 판단하고, 작업에 착수하면 2주 내에 실행한다. 선수금이 300만 엔, 입금이 확인되면 실행을 하게 되고, 완료하면 잔금 350만 엔이 다시 이체된다. 재미있는 것은 살인의뢰를 받는 사람과 청부살인업자는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중간연락책이 두 사람을 중계하고, 그 역시 의뢰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사이에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두고 있어 의뢰인과 청부살인업자는 서로의 정보를 알 도리가 없다는 이중 맹검법으로 이들은 나름 치밀하게 업무를 수행해나간다. 경영컨설턴트이자 청부살인업자인 도미자와 미쓰루, 치과의사이자 살인의뢰를 접수받는 아쿠타가와 이세도노, 공무원이자 중간연락책인 쓰카하라 슈운스케, 이렇게 세 남자가 청부살인을 의뢰 받고, 수행하는 과정이 매우 담백하고 일상적으로 흘러간다는 점 또한 이 작품 만의 특징이다.

 

"나는 의뢰인과 접촉하지 않아. 동기도 모르지. 그래도 여러 명을 죽이다 보면 그냥 알게 되는 게 있어. 인간은 원한이나 증오만으로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지 않아. 그런 동기라면 직접 손을 대지.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기 위한 조건은 내 생각으로는 상대가 살아 있으면 명확하고 구체적인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야...."    p.132

치과의사, 공무원, 경영컨설턴트라는 남부럽지 않은 멀쩡한 직업을 가진 세 남자가 대체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동기나 배경은 알 수 없다. 청부살인이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 독특한 직업을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일상적으로 그리고 있어 사람을 죽이는 일의 무게보다는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하는 비즈니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의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각각의 의뢰 건에 대한 단편처럼 읽히는데, 청부살인업자가 의뢰인의 동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미스터리가 주요 플롯이 된다. 그래서 수상한 의뢰인이 등장하고, 청부살인업자는 무심하게 사람을 죽여놓고 그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추리하는 것이다.

저 여자는 왜 한밤중에 공원에서 검은 물통을 씻을까? 퇴근길에 기저귀를 구입하는 저 독신남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자를 흡혈귀에 물린 모습으로 죽여 달라고 의뢰한 이유는? 어딘가 수상한 의뢰인들은 대체 왜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사원이 1년간 열심히 벌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상대를 망자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살인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청부살인업자피해자의 죽음에 얽힌 사연이라는 독특한 구성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물론 너무도 쿨하고 담담하게 청부살인을 수행하는 킬러의 모습이 그다지 와 닿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청부살인업자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다소 어이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쉽게 빼앗을 수 없고, 거기서 생명을 대신 빼앗아주는 청부살인업자라는 전문직의 존재 의의가 있다니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이상한 논리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이다. 색다른 일상 미스터리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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