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고 행복한 날은," 앤이 언젠가 마릴라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단히 멋지거나 놀라운 일, 신나는 일이 벌어진 날이 아니라 단순하고 사소한
즐거움이 실에 궨 진주알이 한 알씩 미끄러지는 것처럼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생기는 날인 것 같아요."
초록지붕 집의 삶은 그런 날들로
가득했다. 물론 앤에게도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일어나긴 한다. p.294
'빨간 머리 앤'은 빨간 머리의 주근깨투성이 고아 소녀 앤이 실수로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소설인데,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에이번리의 앤'을
비롯하여 9권의 후속 편들이
이어지는 시리즈이다. 이번 두
번째 작품에서 선생님이 된 앤의 첫번째 부임지에서의 삶이 펼쳐지고,
이어지는 후속 편들에서는 길버트와의 사랑과 결혼 생활, 아이들의 삶 등 앤의 일생이
그려진다. 얼마 전에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에이번리의 앤 이야기를 읽었었는데,
이번에는 오디오북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요즘 오디오북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해외에서는 꽤
많은 소설들이 오디오북으로 제작되어 이미 익숙한 책의 소비 채널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북 리더기의 기계음으로 듣는 정도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서서히 오디오북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고전 명작들뿐만 아니라 국내 소설가들의 작품이나 자기 계발서 등등 그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 책은 두툼한 책의 표지에 USB가 삽입되어 있고, 실제 소설의 내용을 종이책으로도 만나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오디오북 음성
파일이 수록되어 있는 USB는 PC 또는
노브툭에 꽂은 뒤 파일을 모두 PC 등 저장 장치에 복사해서 들을 수도 있고,
케이블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옮겨서 들을 수도 있어 매우 편리하다. mp3음악 파일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이동
중에도,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서도 손쉽게 오디오북을 이용할 수 있다.
"오,
그냥 너무 아름답잖아...
옛날이야기처럼...
너무 낭만적이고...
그리고 슬퍼."
앤이 말하며 눈을 깜빡여 눈물을 흘려보냈다. "완벽하게 아름다워.... 하지만 어쩐지 조금 슬픈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아."
"오,
물론 누군가하고 결혼하는 건 무서운 일이긴 해요." 샬로타 4세가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셜리 아가씨, 남편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이 세상에는
많거든요."
p.479
빨간 머리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하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초록지붕의 생활에 적응했던 앤이 어느 새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렇게 수다쟁이에 공상을 좋아하는 여자
아이는, 회초리 대신 애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포부를 굽히지 않을 만큼의 어른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실패하는 것이 두렵고, 여전히 실수투성이에 덤벙대기도 하고, 여전히 혼잣말하는 어린 시절의 버릇도 고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주근깨 빼빼 마른 소녀를 읽던 당시의 어린 소녀에서 지금은 어여쁜 숙녀가 되어 다시 돌아온 앤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이 작품을 낭독한 이지혜 배우님의
목소리는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에서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로 만난
적이 있다. 이지혜 배우님이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화자인 여섯살 옥희의 목소리로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읽으며,
엄마,
손님의 목소리까지 소화해 내고 있어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었다. 그래서 더 기대하며
이번 작품의 음성 파일들을 듣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이 훨씬 더 이지혜 배우님의 매력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꽤 두툼한 분량의 소설이라 지문이 많은 편인데, 지문을 읽을 때와 인물들이 대사를 할 때의 톤이나
발성 등이 전부 달라서 이야기에 막 빠져들어 가면서 들었던 것 같다.
특히 앤의 단짝인 다이애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매력이 더욱 돋보였는데, 그 이유는 직접 오디오북을 통해서 다들 들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이번
기회에 귀로 읽는 독서라는 오디오북만의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져보면 어떨까.
베테랑 배우가 인물들의 성격에 따라 목소리로 연기를 하듯이 낭동을 하고
있어, 더 즐겁고 더 쉬운
독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