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중록 1 아르테 오리지널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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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명과 원한을 짊어지고도 머뭇거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본래의 연약함과 온화함은 모두 깊이 묻어버리고 필사적으로 앞으로, 빛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오랫동안 잔잔하기만 했던 이서백의 마음에 순간 미세한 동요가 일었다. 마치 봄바람이 깊은 호수의 수면 위를 스치며 일으킨 잔잔한 물결 같았다.   p.88

황재하는 형부 시랑이었던 아버지를 도와 여러 사건을 해결했고, 장안에서도 신동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소녀였다. 그렇게 열두 살부터 이름을 알렸던 황재하가 열일곱이 된 어느 날, 가족들이 모두 독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당시에 그녀는 따로 연정을 품고 있는 이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명문 집안의 자제와 혼례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말다툼이 있었고, 바로 그날 저녁 황재하가 손수 가족들에게 떠준 양제탕 안에 치명적인 독, 비상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모든 정황상 가족들을 살해했을 사람은 그녀 밖에 없었고, 황재하는 살해범으로 수배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녀는 몰래 장안으로 숨어드는 데 성공하나 몸을 숨기려 올라탄 마차에서 기왕 이서백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만다. 마침 장안에는 석 달 동안 세 사람이 연달아 죽게된 사방안이라는 사건이 난제로 있었고, 황재하는 자신이 사건을 해결할테니 누명을 벗고 가족을 죽은 범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황재하는 신분을 위장하고 이서백의 곁에서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게 된다.

‘잠중록(簪中錄)’비녀의 기록이라는 뜻으로, 주인공 황재하가 추리를 할 때 머리의 비녀를 뽑아 끼적이는 버릇과도 이어지는 제목이다. 과연 황재하는 기묘하고 잔혹한 사건들을 해결하고 누명까지 벗어 신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차갑지만 고고한 남자 이서백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황실의 기이한 사건들에서 오는 미스터리와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에서 피어나는 로맨스가 짜릿하게 만나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작품이다.

 

 

문득 이서백은 텅 빈 하늘 같던 자신의 인생에 어느샌가 새하얀 구름이 덧칠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5월의 맑게 갠 하늘처럼 맑은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이서백의 운명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서로 대립해도 좋았고, 얽히는 것도 좋았다. 그렇지만 이서백의 인생에서는 역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가며 서로를 잊는 게 제일 좋으리라.   p.293

이 작품은 중국의 인기 로맨스 작가 처처칭한의 대표작이다. 중국 문학 사이트인 텐센트 QQ 독서와 장웨(iReader)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조회수는 1억 뷰를 돌파했으며, 인기에 힘입어 웹툰으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2019년 현재 소설, 만화 저장수 500만을 넘기고 종이책으로 출간되어 8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가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독성이 굉장히 뛰어나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뚜렷한 서사 구조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한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작품이다.

처처칭한의 작품 중 유일한 추리물인 작품인데, 그녀가 이미 중학생이었을 적 얼개를 짜놨으며 이후 무려 13년에 걸쳐 집필을 준비했다고 한다. 긴 집필 기간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 스토리는 탄탄하고 흥미진진하며 캐릭터는 조연 단 한 명까지도 생생하고 입체적이다. 이번에 1권과 2권이 함께 출간되었고, 3권과 4권도 출간될 예정이니, 전체 4권으로 완결되는 방대한 분량이다. 기본적인 구조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반복되지만, 진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인물들의 삶이다. 벼랑 끝에 몰리며 신분을 감추게 된 황재하와 알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이서백을 비롯해서 시체 해부의 달인 주자진, 욕망의 화신 황후, 강직한 가문의 수호자 왕온 등 생생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드라마를 만들어 나간다. 역사와 허구가 뒤섞이고, 황실이라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와 치열한 암투극이 더욱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있다. 두툼한 페이지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으니, 어서 두 번째 이야기로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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