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힌 거짓말 마틴 베너 시리즈
크리스티나 올손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결정을 내리고 전부 다시 상자에 넣은 후 내 방으로 상자를 들고 갔다. 아마도 일기장에서 손을 못 뗄 것 같다. 잠들 때까지 이걸 읽고 있겠지.

그럼 결국 토요일은 놀기보다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말했듯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으니까.

내가 정말 지금 진지하게 죽은 사람을 변호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p.72~73

 

스톡홀름에 사는 변호사 마틴 베너에게 어느 날 바비라는 남자가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달라고, 동생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바비의 동생은 6개월 전에 죽었고, 나쁜 놈들이 가짜 혐의를 씌워서 동생 인생을 망가뜨렸다고 한다. 그러니 죽은 여동생 사라 텔의 누명을 벗겨달라는 거였다. 게다가 그녀는 바로 다섯 건의 살인을 자백한 후 감독하에 특별 외출을 나갔다가 도주해 공판일 하루 전날 자살한 그 여자, 심각한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던 사라 텍사스였다. 바비는 당연히 못 하겠다고 두 손을 들어 보인다. 동생분이 무죄라는 증거를 갖고 있다면 경찰서로 가라고. 자신은 변호사지 사건 수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녀가 죽기 몇 달 전, 신문은 사라 텍사스에 관한 기사로 도배가 됐었다. 인형 같은 얼굴의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연쇄살인범이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죽었고, 마틴은 사설탐정이 아니라 변호사였다. 대체 무슨 수로 죽은 여자의 결백을 증명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스스로 자백했고, 무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사건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도사리고 있었다. 대체 왜 아무도 캐묻지 않을 세 건의 살인 범행을 자백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격자도 없었고, 지문 등 현장 증거도 없었던 터라 그녀가 혐의를 스스로 인정하고 직접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아마 유죄 판결을 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어디서 찾아내야 할진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었고, 마틴은 그게 계속 신경이 쓰여 결국 그 사건에 대한 비공식적 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묻는다. 내가 알았어야 했나? 우리가 깨달았어야 했나? 답은 분명하다. 당연히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었는지는 지금 돌이켜봐도 모르겠다.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덫에 빠졌을 때 뒤따르는 결과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한치 앞도 모르고. 이미 균열은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폼페이와 같은 운명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었다.   p.345~346

 

스웨덴에서만 25만 부, 전 세계 32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스웨덴 범죄소설의 여왕" 크리스티나 올손의 작품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데, 대체 왜 이제야 출간되었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었다. 북유럽 누아르, 스웨덴 범죄소설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 않는 스케일과 가독성, 강렬한 스토리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마틴 베너라는 인물도 꽤나 독특한 캐릭터인데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꼬여낼 수 있는 바람둥이 흑인 변호사이다. 그는 네 살 난 딸을 키우고 있는데, 동생과 매제가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맡아줄 친척이 없어 위탁아동으로 가게 되자 자신이 키우겠다고 나선 거였다. 시니컬하고 잘나가는 변호사이지만, 알고 보면 가슴 따뜻한 남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마틴의 1인칭 시점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가 삶에 대해 생각하는 통찰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피의자의 자살로 이미 종결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마틴은 점점 더 혼란스럽다. 내가 자처해서 바보가 되는 길을 택한 건지, 알고 보니 결국 실체도 없는 유령을 좇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그는 범죄 용의자로 몰리게 되고, 그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고, 주인공 마틴의 독특한 매력 역시 이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를 고대하게 만들어 준다. 스웨덴 범죄소설 작가들을 유독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정말 뛰어난 작가들이 많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마이 셰발,페르 발뢰,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 발란데르 시리즈의 헤닝 만켈에 이어 크리스티나 올손도 그러한 명맥을 이어가는 범죄소설계의 거장임에 분명하다. 그녀의 작품들이 더 많이 국내에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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