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9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천은실 그림, 정지현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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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가만가만 작은 사과나무로 다가가 새를 올려다보았다.

"나랑 친구가 되어 줄래? ?"

메리는 마치 사람에게 하듯이 새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의 거친 목소리도 아니었고 인도에서 하던 대로 거만한 말투도 아니었다. 너무 부드럽고 간절하고 달래는 듯한 목소리여서 벤 웨더 스타프 노인은 메리가 자신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놀란 것만큼이나 깜짝 놀랐다.   p.66

조그맣고 야윈 얼굴에 역시 조그맣고 야윈 몸, 숱이 적은 머리, 심술궂은 표정의 메리는 일하느라 늘 바쁜 데다 병치레가 잦은 아버지와 굉장한 미인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파티에만 관심이 있던 어머니에게서 전혀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랐다. 메리의 어머니는 딸을 원치 않았고, 메리가 태어나자마자 유모에게 맡겨 버리고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메리는 병약하고 짜증 많고 못생긴 아기일 적부터 되도록 부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어야 했고, 아이가 울면 마담이 화를 냈기 때문에 하인들은 메리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주었다. 그 결과 메리는 이미 여섯 살 무렵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이기적인 폭군이 되어 있었다.

메리가 아홉 살쯤 되던 해, 지독하게 더운 어느 날 아침 인도에 콜레라가 발병해서 사람들이 파리 떼처럼 죽어 갔고, 메리의 부모도, 하인들도 모두 죽고, 남은 이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혼자 남겨진 메리는 영국에 있는 고모부 댁에서 살게 된다. 메리가 살게 된 그 저택은 지어진 지 600년이나 되었고, 황무지 끝에 있었으며, 방이 100개쯤 되지만 대부분은 문이 잠겨 있는 곳이었다. 저택을 둘러싼 커다란 정원과 뜰도 있고, 그림이나 오래된 훌륭한 가구도 많은 대저택이었다. 고모부는 등이 굽었고, 성격이 괴상했으며, 아내가 죽고 나서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고 더 괴상해졌다고 했다.

하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옷을 입어 본 적도 없고, 누군가를 배려하거나, 걱정하거나, 좋아해본 적도 없었던 심술쟁이 소녀 메리는 그 곳에서 수다쟁이 하녀 마사와 그녀의 동생 디콘을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져 간다. 우연히 돌아가신 고모가 아끼던 비밀의 뜰을 발견하게 되고, 꽃을 가꾸며 동물들과도 친해지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씩 배워 나가게 된 것이다.

하늘이 다시 파랗게 돌아온 날 아침, 메리는 일찍 잠에서 깼다.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즐거워서 메리는 얼른 창가로 달려갔다.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창문을 열자 신선하고 향긋한 바람이 불어왔다. 황무지는 파란색이었고 온 세상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새들이 콘서트를 위해 음을 맞추는 듯 여기저기에서 부드럽고 조그만 지저귐이 들려왔다. 메리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햇살을 매만졌다.   p.233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 심술궂고 버릇없었던 메리와 어릴 때부터 병약해 곧 죽을 거라며 두려움에 떨던 콜린, 그리고 동물들과 이야기할 줄 아는 디콘까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조금씩 달라져 가는 모습과 버려진 뜰에 나타나는 마법 같은 변화들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그려지고 있는 작품이다. 부드러운 햇살, 신선한 공기와 따스한 바람, 연둣빛 새싹, 향긋한 꽃송이, 새들의 노랫소리들이 그림 같은 언어들과 아름다운 일러스트들과 만나서 정말 마법이 시작되는 것처럼 봄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아홉 번째 책이다. 클래식한 패턴의 고혹적인 표지와 기존보다 훨씬 더 커진 판형으로 가독성을 높여 주었다. 소장용으로도, 선물용으로도 제격인 책이 아닐까 싶다.

<피노키오>, <백설공주> 등에서 아름다운 색감과 꿈꾸는 듯한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선보였던 천은실 작가의 그림들로 인해 10년간 닫혀 있던 비밀스러운 뜰에 화사한 봄이 열리는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재탄생되었다. 푸릇푸릇한 초록 색감의 표지부터 페이지 곳곳을 채우고 있는 산뜻한 일러스트들이 지금 이 계절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바로 그 아름다운 일러스트들 때문에 어른이 되어 다시 이 작품을 읽더라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힐링하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주는 것 같다. 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는 예전 버전으로 다 소장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리커버북 시리즈의 고급스러운 표지와 판형이 훨씬 더 마음에 들어 소장 욕구를 마구 불러 일으킨다. 페이지 가득한 봄의 마법을 느껴보고 싶다면, 고전 명작을 오래도록 소장하고 싶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선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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